[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북촌, 시간의 향기… 도시는 기억으로 산다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북촌, 시간의 향기… 도시는 기억으로 산다

입력 2017-05-31 18:16
업데이트 2017-06-01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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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북촌에 부는 변화의 바람

서울신문이 지난 27일부터 매주 토요일 서울시 및 서울도시문화연구원 등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를 시작했다.

미래유산이란 아직 문화재로 등록되진 않았지만 미래 세대에 물려줄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서울 근현대 문화유산이다.

총 25회에 걸쳐 진행되는 투어는 서울미래유산 사이트에 접수한 30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426개의 미래보물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참가자들은 역사책에서는 읽을 수 없지만 100년 후에는 역사책에 기록될 미래가치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족적을 남기게 된다.

첫 테마는 ‘사방팔방’(四方八方)이다. 서울의 사대문 안을 사방으로, 사대문 밖을 팔방으로 각각 구분해 13회로 구성했으며 첫 회는 그중에서도 북촌 일대를 둘러봤다.

3일은 동촌, 10일은 서촌을 찾아간다. 참가신청은 서울미래유산(futureheritage.seoul.go.kr) 사이트에서 한다.

매주 월요일 오전 9시부터 당회차 신청을 선착순으로 받는다.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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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한옥마을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서울미래유산 북촌한옥밀집지역. 한옥 지붕과 지붕, 처마와 처마가 줄지어 정겨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조선의 건축왕’ 정세권이 솟을대문집을 매입해 지분을 쪼갠 뒤 작은 개량한옥을 지어 판 것이 오늘의 북촌 한옥이다.
북촌 한옥마을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서울미래유산 북촌한옥밀집지역. 한옥 지붕과 지붕, 처마와 처마가 줄지어 정겨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조선의 건축왕’ 정세권이 솟을대문집을 매입해 지분을 쪼갠 뒤 작은 개량한옥을 지어 판 것이 오늘의 북촌 한옥이다.
‘서울미래유산-2017 그랜드투어’의 첫 회는 북촌이다. ‘북촌에 부는 변화의 바람’이라는 주제를 통해 서울의 과거와 미래가 어떻게 교차하는지 들여다봤다. ‘호모 나랜스’(Homo Narrans)들이 모여 ‘드림 소사이어티’를 꿈꾸는 나들이다.

답사단은 지난 27일 오전 10시 집결지인 정독도서관을 출발해 김옥균 집터와 조선어학회 터를 거쳐 북촌 한옥밀집지역을 돈 뒤 만해 한용운의 유심사 터를 찾았다. 인촌 김성수 가옥과 중앙고등학교를 둘러보고 개화파 박규수의 집터였던 헌법재판소에서 ‘짧지만 긴’ 여정을 마무리했다. 2시간여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다녀왔다. 답사단의 발길이 닿은 모두 9곳의 코스 중 서울미래유산은 북촌한옥밀집지역과 김성수 가옥, 헌법재판소 등 3곳이고 사적(중앙고)과 등록문화재(정독도서관)가 2곳이며 나머지 4곳은 옛터이다. 오래된 도시, 서울의 심장부 북촌의 정체성을 실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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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침략이 노골화된 구한말, 신학문을 통한 교육구국·교육입국을 위해 1908년 6월 설립된 중앙고등학교 교정.
일제 침략이 노골화된 구한말, 신학문을 통한 교육구국·교육입국을 위해 1908년 6월 설립된 중앙고등학교 교정.
●호모나랜스들 모여 2시간 짧고 긴 여정

그렇다면 북촌은 어떤 곳인가. 서울을 알아야 북촌을 알고, 북촌을 알아야 북촌에서 부는 바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은 “도시는 기억으로 살아간다”라고 읊었지만 서울은 2000년 기원전의 도시, 600년 도읍지의 기억이 별반 없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통에 불타고 약탈당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강제로 민족 자산을 말살당했고 한국전쟁 때 파괴됐다. 1960년대 이후 무지막지한 개발 광풍을 타고 또 한번 뭉개졌다. 역사의 향기는 흩어졌다. 한강 이남으로 영역을 확대한 서울은 사실상 한국전쟁 이후 재건된 신생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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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촌 김성수가 1918년부터 19 55년까지 살았던 옛집. 현재는 인촌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인촌 김성수가 1918년부터 19 55년까지 살았던 옛집. 현재는 인촌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역사도시라고 하기엔 씁쓸한 서울

서울의 재건은 성공적일까. 서울은 역동적인 현대적 도시로 발전했지만 역사도시라고 자평하기엔 머쓱하다. 솔직하게 말해 서울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은 꽤 혼란스럽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처럼 강북 구도심을 올드타운으로 남겨두고 강남 뉴타운을 만들지 못한 게 패착이다. 발상의 전환도 없었고, 한국전쟁 이후 광적인 서울집중이 오래된 것들은 걷어내고, 나머지는 땅속에 묻는 데 정당성의 논리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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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가회동 11 북촌 한옥 밀집지역에서 정순희(맨 앞 오른쪽) 해설사가 한옥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종로구 가회동 11 북촌 한옥 밀집지역에서 정순희(맨 앞 오른쪽) 해설사가 한옥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북촌의 기원은 조선시대 한성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성부는 ‘경조 5부’라고 하여 동부, 서부, 남부, 북부, 중부 등 5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눠 다스렸는데 오늘날의 자치구라고 보면 된다. 경복궁과 사대문을 축으로 해서 구분하면 북부는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이고 동부는 창덕궁과 흥인지문 사이, 서부는 경복궁에서 돈의문 사이, 남부는 숭례문에서 청계천 사이 어림이다. 중부는 청계천을 중심으로 양쪽에 형성됐다. 5부가 곧 5촌이다.
북촌투어의 종착지인 헌법재판소 뒤뜰의 백송이 눈부시다. 이곳은 영조의 막내딸 화길옹주가 살았고, 구한말에는 개화파 박규수와 민영익이 살았던 집터였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종합병원인 제중원과 일제강점기 통리기무아문이 있던 자리다.
북촌투어의 종착지인 헌법재판소 뒤뜰의 백송이 눈부시다. 이곳은 영조의 막내딸 화길옹주가 살았고, 구한말에는 개화파 박규수와 민영익이 살았던 집터였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종합병원인 제중원과 일제강점기 통리기무아문이 있던 자리다.
청계천을 경계로 북쪽은 권문세가와 현역 벼슬아치, 그들을 모시는 아전 및 겸인 족속의 주거지였다. 청계천부터 남산 아래까지인 남촌에는 지체 낮은 관리나 퇴락한 양반, 무반들이 모여 살았다. 다동·무교동·수표동·입정동·주교동·관수동 등 중촌에는 의관, 역관, 율사, 화원, 시전상인, 군인군속이 살았다.

황현은 매천야록(1864~1887년 기록)에서 “서울의 대로인 종각 이북을 북촌이라고 부르며 노론이 살고 있고 종각 남쪽을 남촌이라고 하는데 소론 이하 삼색(소론, 남인, 북인)이 섞여 살았다”고 기록했고 황성신문 1900년 10월 9일자에는 “북촌 사람들의 말투는 매우 부드럽고 조심스러우며, 남촌 사람들의 말투는 빠르다”고 말씨에 따라 지역별 기질을 분석하는 기사를 실었다. 서울은 신분과 지위, 직업에 따라 사는 곳이 달랐다. 거주 지역에 신분과 지위, 직업의 정보가 새겨져 지역색을 형성했다. 지역색이 차별의식과 적대감, 사색당파로 이어졌다.

서울의 심장부인 북촌은 왜, 어떻게 달라졌을까. 북촌은 주거지로서 최상의 입지적 조건 때문에 조선 중기까지 왕족과 벼슬아치들이 모여 사는 집단거주지였으며 후기 들어 안동 김씨와 여흥 민씨 같은 세도가와 경화사족들이 똬리를 틀었다. 한말에는 교육과 의료의 중심지로 개화사상과 갑신정변의 발상지였으며 이후 신분 상승을 위해 상경한 신흥 지방부호와 지주, 사회지도층이 몰려들어 삼일운동을 비롯한 민족운동의 진앙지가 되었다. 그러나 외세에 의존하면서 기층 민중과는 유리된 기득권 세력의 개혁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뚜렷했다.

●그래도 서울의 심장부 북촌은…

북촌에서 잉태, 발화한 삼일운동이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북촌의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300만 신도를 자랑하던 천도교가 경운동 중앙대교당을 중심으로 1920~1930년대 민족운동을 주도했고 일제 패망이후 몽양 여운형의 계동 집과 건국준비위원회 사무실에서 다양한 정치실험이 시도됐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헌법재판소는 개화파 박규수와 홍영식의 집이었으며 제중원을 거쳐 경기여고와 창덕여고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해방 직후 당시 경기여고 강당에서 여운형과 박헌영이 전국인민대표자대회를 열어 조선인민공화국 수립이 선포된 곳이기도 하다. 역사는 돌고 돈다지만 북촌만큼 역사가 켜켜이 겹치는 곳도 흔치 않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2017-06-01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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