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비서관 써달라”… 7급도 마다않는 변호사

“의원 비서관 써달라”… 7급도 마다않는 변호사

한재희 기자
입력 2017-04-20 00:10
업데이트 2017-04-20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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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협 ‘인력풀 구성’ 국회에 공문
변호사 출신 60~70명 이를 듯
초짜 구직난·직급 하향화 가속
연수 인정·몸값 높여 로펌 재취업


얼마 전 대한변호사협회가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각 의원실에 팩스로 보낸 공문 한 장이 보좌진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3월 23일 전송된 이 공문에는 ‘보좌관 및 비서관을 희망하는 회원을 모집해 인력풀을 구성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수년 전부터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국회 보좌진 입성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터에 변협마저 팔을 걷고 나선 것이다. 변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지 않은 기존 보좌진으로선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맞은 셈이다.

●최근 비서 채용에 4~5명 지원

지난달 중순 7급 비서 채용을 진행한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실에는 50여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이 가운데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도 4~5명이나 됐다. 판사 출신인 나 의원은 고심 끝에 20대 중반의 로스쿨 출신 변호사를 7급 비서로 낙점했다. 주로 4~5급 보좌진으로 채용되던 변호사들로선 ‘지위’가 한 단계 격하된 셈이다.

19일 변협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서 근무 중인 변호사 출신 보좌진은 30여명에 이른다. 그러나 이는 변호사 출신 보좌진으로 구성된 커뮤니티에서 활동 중인 이들만 담은 수치다. 국회 사무처나 변협이 정확한 통계를 갖고 있지 않아 모를 뿐 실제로는 변호사 출신 보좌진이 60~70명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적지 않은 변호사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6~7급 비서로 일하고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매년 1500명이 넘는 로스쿨 출신 법조인들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초짜 변호사’들의 구직난과 직급 하향화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율 변협 공보이사는 “국회는 입법 활동이 가장 중요한데 그러한 곳에 전문성이 있는 법조인들이 진출할 수 있도록 변협에서 돕고 있다”며 “국회에 보낸 공문을 보고 의원실에서 연락이 와 실제로 변호사들을 연결시켜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초임 변호사들 입장에서도 국회에서 근무할 경우 ‘새내기 법조인’이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6개월 연수를 인정받을 수 있어 웬만한 법무법인에서 연수하는 것보다 낫다는 평가가 나온다. 심지어 몇몇 변호사들은 의원실에서 무급으로 활동하는 입법 보조원으로 이름만 걸어 놓고 실제로 활동을 하지 않는 ‘꼼수’까지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비서 출신 A(30)씨는 “요즘은 로펌에서도 대관 업무를 일부 맡고 있는데 아무래도 국회 출신 변호사들이 이런 일을 하기에 적격인 것 같다”며 “국회에서 경험을 쌓은 뒤 이를 바탕으로 몸값을 높여 로펌에 재취업하려는 변호사들도 눈에 띈다”고 말했다.

●기존 보좌진 ‘낙하산’에 위기감

국회 의원회관에 변호사들이 북적이자 기존 보좌진의 시선도 날카로워지고 있다. 법률지식만 갖췄을 뿐 보좌진으로서의 실무는 서툰 변호사들이 낙하산을 타고 보좌관·비서관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현장을 모르는 ‘낙하산 변호사’가 서툰 업무 지시를 반복해 보좌진 사이에 균열이 발생한 의원실도 있다. 더군다나 몇몇 변호사들이 몸을 써야 하는 단순업무에 비협조적이어서 곤란하다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의원실의 비서관 B(35)씨는 “예전에는 일이 너무 힘들면 의원실을 옮기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자리를 노리는 변호사들이 너무 많다”며 “채용 면접에서 스펙상 변호사들이 유리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요즘은 다른 방으로 옮기기도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2017-04-2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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