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규명 1등 공신인데…버스 블랙박스 툭하면 ‘먹통’

사고 규명 1등 공신인데…버스 블랙박스 툭하면 ‘먹통’

입력 2017-07-10 10:24
업데이트 2017-07-1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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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존 초등생 사망 시내버스·단양 추락 OT버스 작동 안 돼강제규정 없어 유지·관리 허점…“사업용 버스 설치 의무화해야”

지난달 15일 청주의 한 어린이보호구역 도로변을 걷던 초등학생이 시내버스에 치여 숨졌다.

경찰은 사고가 났는데도 차를 세워 현장 구호 조치를 하지 않은 채 20분가량 운행을 계속했던 버스운전기사 A(60)씨를 검거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차량 혐의로 입건했다.

A씨는 사고가 난 줄 몰랐다며 도주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반면 피해자 유가족들은 명백한 ‘뺑소니’ 사고라고 엄벌을 요구하고 있다.

진실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사고 정황을 밝혀줄 유일한 단서는 블랙박스였다. 하지만 사고 당시 버스 블랙박스 저장장치는 오류가 난 상태였다.

경찰이 보름간 데이터 복구작업을 벌인 결과 블랙박스에는 사고 나기 10일 이전의 영상기록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불의의 사고에 대비해 사고 원인을 규명할 수 있었던 블랙박스가 제역할을 못한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후 도주 의도가 있었는지를 놓고 운전기사와 유가족이 전혀 다른 주장을 하는 상황”이라며 “블랙박스가 제대로 작동됐다면 사건 경위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됐을 텐데 아쉽다”고 전했다.

지난 2월 22일 충북 단양 중앙고속도로를 달리던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 관광버스가 가드레일을 뚫고 추락했다.

이 사고로 운전자 이모(62)씨가 숨졌으며, 대학생 2명이 중상을, 나머지 42명이 경상이나 찰과상을 입었다.

사고 버스의 블랙박스 역시 사고 당시 정상 작동이 안 됐고, 사고 장면을 담지 않았다. 사고 버스를 뒤따르던 관광버스의 블랙박스도 확인했지만, 이 역시 녹화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설치는 했지만,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탓에 이들 버스 2대의 블랙박스는 사고 원인을 밝혀내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무용지물이었다.

이달 5일 청주의 한 교차로에서 미니버스가 인도로 돌진, 2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친 사고가 발생했다.

운전기사는 내리막을 내려오던 버스가 갑자기 속도가 붙으면서 제동장치가 말을 듣지 않았다며 급발진 사고였다고 주장했다.

이번에도 버스 안에 설치된 블랙박스는 이달 1일부터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교통안전법에 따라 사업용 차량에 설치해야 하는 디지털운행기록계(DTG)와는 달리 블랙박스는 설치·관리에 대한 강제력이 없다.

이 때문에 요식적으로 설치만 할 뿐 관리를 허술하게 정작 중요한 순간 도움을 받지 못하는 ‘먹통’ 블랙박스가 허다하다.

버스운송업체 관계자는 “사건·사고에 대비해 블랙박스를 설치하지만, 운행 일정이 빡빡해 매일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DTG와 함께 블랙박스는 사고 원인 규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지난 5월 영동고속도로에서 8명의 사상자를 낸 버스 사고의 원인이 졸음운전인 사실에 블랙박스를 통해 밝혀졌다.

사고버스 안 블랙박스에는 버스 운전기사가 사고 전부터 하품을 하고 몸을 비트는 등 졸음을 쫓기 위한 행동을 한 것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시내버스, 고속버스 등 사업용 차량에 블랙박스 설치와 체계적 관리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임재경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중이 이용하는 시내버스 등 사업용 차량 블랙박스 설치를 법으로 정하고, 교통안전공단 등 관계 기관에 단속 권한을 줘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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