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수사’ 국정원…제2의 카드는 여적 음모?

‘이석기 수사’ 국정원…제2의 카드는 여적 음모?

입력 2013-09-08 00:00
수정 2013-09-08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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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죄’ 한국전쟁 이후 판례 전무…추가 적용 놓고 논란”공소유지 ‘묘안’” vs “증거부족 반증 ‘고육책’”

‘이석기·통합진보당 내란 음모’ 사건을 수사 중인 국가정보원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게 이름도 생소한 ‘여적(與敵) 음모’ 혐의를 추가 적용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여적죄는 형법상 가장 무거운 외환죄에 속한다. 그동안 실제 적용된 사례가 거의 없을 만큼 법조계에서도 낯선 용어다.

공안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사실상 사문화된 법조문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이를 두고 국정원이 일단 ‘내란 음모·선동’ 혐의를 앞세워 이 의원을 구속했지만 향후 혐의 입증이 곤란할 것에 대비해 비상용 카드로 여적죄를 들고나온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 ‘적국과 합세해 대한민국에 항적’…”판례 없어 사실상 사문화”

형법 93조는 ‘적국과 합세해 대한민국에 항적한 행위’를 여적죄로 규정하면서 이를 범한 자는 사형에 처하도록 했다.

여적죄는 내란죄와 마찬가지로 실제 행위에 이르지 않은 예비나 음모, 선동, 선전행위까지 처벌한다.

형법 101조(예비, 음모, 선동, 선전)에는 ‘여적죄 등을 범할 목적으로 예비 또는 음모한 자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죄를 선동 또는 선전한 자도 같은 형에 처한다’고 나와있다.

국정원이 이 의원 등 이른바 ‘RO(Revolution Organization)’ 조직원들에게 추가 적용을 검토 중인 혐의는 ‘여적 음모’로 알려졌다.

그동안의 감청 내용과 지난 5월 서울 합정동 모임 녹취록을 토대로 이들이 전쟁 시 ‘적국’을 도와 대한민국 내 국가기간시설 등을 파괴하려고 ‘모의’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30여 년 만에 등장한 내란죄처럼 여적 내지 여적 음모 역시 한국전쟁 이후 구축된 판례가 거의 없을 정도로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이라는 점이다.

빈번한 공안사건에서도 여적 내지 여적음모가 실제로 적용된 사례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여적죄가 성립하려면 ‘적국’의 존재가 필요한데 우리나라 헌법은 북한을 우리 영토로 규정, ‘적국’이 아닌 ‘반국가단체’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1983년 대법원 판례를 넓게 해석할 경우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의견도 있다.

대법원은 형법상 간첩죄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북한 괴뢰집단은 반국가적 불법단체로서 국가로 볼 수 없으나, 간첩죄의 적용에는 이를 국가에 준해 취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이후 판례 변경 없이 이를 유지하고 있는데, 여적죄 해석에 확대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간첩과 여적이 형법상 같은 외환죄에 해당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북한을 여적죄의 ‘적국’에 해당하는 것으로 적극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서 “적국의 개념에 ‘사실상 전쟁을 수행하는 나라’도 포함되므로 남북관계를 감안할 경우 북한을 여기에 포함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공소유지 위한 안전판” vs “증거부족 반증하는 꼼수”

법률전문가들은 국정원이 애초 이 의원에게 적용한 내란음모 혐의의 입증이 쉽지 않자 대신 여적 음모를 들고나온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 경우 국정원이 기존의 내란음모 대신 여적 음모 내지 예비 혐의를 적용하거나 둘 중 하나를 주위적 공소사실로, 나머지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기재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범죄를 처벌해야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하면서도 혹시 기존 주장만 고수하다 입증 부족으로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내란음모에 비해 여적음모나 예비가 공소유지가 좀 더 수월한 측면이 있다”면서 “그러나 워낙 특이한 죄명인 만큼 실제 재판 과정에서 어떤 결론이 날지 예단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북한을 적국으로 볼 수 있는지, 이 의원 등의 행위가 적국과 합세해 대한민국에 항적한 행위인지도 보는 시각에 따라 의견이 엇갈린다.

보수진영의 한 변호사는 “이 의원 등 피고인들이 묵비권 행사로 일관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국토 참절과 국헌문란’이라는 내란음모 혐의를 입증하기 어려울 수 있다”면서 “그런 측면에서 여적음모 혐의를 ‘안전판’ 역할로 삼으려는 것 아닌가 보여진다”고 분석했다.

고위 법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내란음모 등은 목적범이기 때문에 혐의 입증이 까다롭다고 보고 국정원이 여적음모라는 ‘묘안’을 짜낸 것으로 본다”면서 “예비적 공소사실로 기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증거부족으로 혐의 입증이 어렵자 궁지에 몰린 국정원이 ‘묘수’를 짜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법무법인 덕수의 김형태 변호사는 “공개된 녹취록을 살펴봐도 애초 적용한 내란음모 혐의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내용이 없다”면서 “구체적 행위나 계획이 언급되지 않은 만큼 여적음모 적용도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한결의 박주민 변호사는 “국정원이 내란 음모·선동 혐의를 적용해 구속은 시켰지만 법정에서 입증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꼼수를 부리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공안당국 내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감지된다.

검찰 내 한 공안전문 검사는 “기본적으로 우리 헌법은 북한을 국가로 보지 않는다”고 전제한 뒤 “간첩죄에 있어 북한을 적국에 해당한다고 본 판례를 여적죄에 적용할 수 있을지는 다툼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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