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현장] 야생동물의 습격···신음하는 들녘

[농촌현장] 야생동물의 습격···신음하는 들녘

입력 2010-08-08 00:00
업데이트 2010-08-08 11:36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충북 옥천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는 강석(74.옥천읍 가풍리)씨는 요즘 밭에 들어설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밤마다 떼 지어 몰려다니는 멧돼지가 출하를 앞둔 복숭아를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고 나뭇가지를 부러뜨려 4천㎡의 복숭아밭을 망가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 확대
충북 옥천군 옥천읍 가풍리에서 한 농부가 야생동물을 쫓기 위해 농경지에 설치한 경광등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충북 옥천군 옥천읍 가풍리에서 한 농부가 야생동물을 쫓기 위해 농경지에 설치한 경광등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씨는 “멧돼지가 들락거리면서 땅에서 가까운 가지에 매달린 복숭아는 남아나는 게 없다”면서 “참다못해 최근 옥천군에 엽사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인근에서 복숭아와 고구마 농사를 짓는 진용제(59)씨도 매일 밤 밭을 헤집고 다니는 멧돼지와 고라니 때문에 수확을 포기해야 할 판이다.

 진씨는 “지난 봄 100여만원을 들여 밭 주변에 전기울타리를 치고 경광등까지 설치했지만 소용없다”며 “며칠 전에는 멧돼지를 잡기 위해 농약 묻힌 고구마까지 땅에 묻어놨다”고 성난 마음을 털어놨다.

 수확철을 앞두고 풍성해야 할 농촌들녘에서 야생동물과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있다.

 농민들은 농경지 주변에 울타리를 치거나 허수아비·경음기·경광등 등을 동원해 방어에 나서고 있지만 야음을 틈탄 야생동물의 습격에는 속수무책이다.

 ◇넘치는 멧돼지..농민까지 공격

 환경부가 집계한 최근 4년간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피해액은 616억7천600만원.

 이 중 멧돼지(259억원)와 고라니(100억원)에 의한 피해액이 전체의 58.3%를 차지했다.

 이어 까치(109억원)·오리류(40억원)·청설모(22억원)·꿩(18억원) 등도 유해조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가장 큰 고민거리는 천적 없이 무한 번식 중인 멧돼지다.

 국립환경과학원은 2008년 연구보고서를 통해 전국의 100㏊당 멧돼지 평균서식밀도가 4.1마리로 적정밀도(1.1마리)를 4배 가까이 웃돈다고 밝혔다.

 멧돼지가 넘쳐나면서 농민이 공격받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충북 보은군 마로면 김영란(64.여)씨는 지난 6월 집 뒤 콩밭에서 멧돼지 습격을 받아 왼쪽 다리를 8바늘이나 꿰매는 중상을 입었다.

 김씨는 “밭일을 하는 데 갑자기 송아지만한 멧돼지가 수풀 속에서 뛰쳐나와 나를 세차게 들이받고 달아났다”며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인데다 겁에 질려 미처 피할 틈도 없었다”고 급박했던 당시를 기억했다.

 경북 안동시 임동면 이모(65.여)씨도 얼마 전 베트남서 시집온 며느리와 함께 밭에 나갔다가 덩치 큰 멧돼지와 맞닥뜨리는 아찔한 순간을 경험했다.

 이씨는 “다행히 공격받지는 않았지만 난생 처음 멧돼지를 본 며느리가 큰 충격을 받아 아직까지 밭 근처엔 얼씬거리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전북 장수군 계남면에서는 마을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멧돼지 2마리 중 1마리가 경찰이 쏜 권총에 사살됐다.

 ◇눈물겨운 퇴치..현실성 없는 피해보상

 전주 모락산 기슭서 벼와 복숭아 농사를 짓는 이동렬(54)씨는 “야생동물을 쫓기 위해 농경지 주변에 거울·인형·농약병 등을 세워놓거나 심지어 멧돼지가 좋아한다는 막걸리를 ‘접대용’으로 준비해 두지만 소용이 없다”고 한탄을 했다.

 그는 이어 “참다못해 최근 엽총을 구입했는데 허가절차가 복잡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현재 총기를 이용해 야생동물을 잡으려면 지자체에 피해신고부터 해야 한다.

 공무원이 현장에 나가 실태를 조사한 뒤 서류를 꾸며 포획허가를 내주면 이를 근거로 관할 경찰서에 영치해둔 총기를 넘겨받게 되는 데,절차를 밟는 데만 3~7일 걸린다.

 이씨는 “허가받는 동안 농경지는 이미 쑥대밭이 되기 일쑤고,허가된 총기도 해지기 전 경찰관서에 입고하기 때문에 야생동물이 주로 활동하는 야간에는 무용지물”이라고 하소연했다.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가 심각해지자 일선 지자체는 앞다퉈 조례를 제정해 보상에 나서고 있지만 지급기준이 까다롭고 보상액도 빈약하다.

 지난 4월 1천500㎡의 맥문동(약초) 잎을 고라니떼가 모두 뜯어먹는 바람에 500만원이 넘는 피해를 본 이영식(66.청양군 장평면)씨는 최근 군으로부터 280만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씨앗 값과 인건비에도 못미치는 액수지만 조례에 규정된 보상금 상한액이 300만원에 불과해 어쩔수 없었다.

 작년 충북도내 12개 시·군이 내준 260건의 농작물 피해 보상금은 1억5천872만원으로 건당 평균 61만원씩 나가는 데 그쳤다.

 ◇개체수 관리 한계..대책은?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줄이려면 우선 포화상태에 이른 개체수 조절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환경부는 수렵장 운영과 함께 봄~가을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유해조수 구제활동를 펴고 있으나 개체수 관리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충북 옥천에서 야생동물피해방지단으로 활동하는 김창동(42.한국야생동식물보호관리협회 사무장)씨는 “수풀이 우거진 여름철에는 은신처가 많아 야생동물을 추격하기가 쉽지않다”면서 “겨울철 수렵구역을 대폭 늘려 번식자체를 차단하는 게 개체수 관리에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국립환경과학원 김원명(48.자연자원과) 박사도 “4~5년마다 시·군 단위로 순환수렵장을 운영하는 것으로 멧돼지나 고라니의 개체수 조절은 불가능하다”며 “수렵구역을 시·도 단위로 광역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야생동물을 쫓는 전기울타리나 철조망·경음기 등 피해방지시설에 대한 지원 확대도 필요하다.

 강원도내 18개 시·군은 작년 국비 2억5천만원 등 8억3천만원으로 이들 시설을 갖출 계획이었으나 농민신청이 쇄도하는 바람에 지방비 16억8천만원을 추가 집행했다.

 강원도 관계자는 “전기울타리 효과가 입증되면서 신청은 해마다 늘고 있으나 국비지원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면서 “현재 30%씩 지원되는 국비를 50%로 늘리고 지원규모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경부는 농촌의 골칫거리가 된 멧돼지 관리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최근 서울대 이우신 교수팀에 수렵장 운영,포획제도 개선,수렵동물에 대한 태그(Tag)도입 방안 등이 포함된 용역을 의뢰했다.

 환경부 자연자원과 손상기 사무관은 “포화상태에 이른 멧돼지 피해를 줄이려면 적정 밀도까지 솎아내는 게 필요하지만 동물보호단체 등의 반발도 만만찮은 상황”이라며 “용역을 통해 효과적인 관리방안을 모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많이 본 뉴스
종부세 완화, 당신의 생각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종합부동산세 완화와 관련한 논쟁이 뜨겁습니다. 1가구 1주택·실거주자에 대한 종부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종부세 완화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완화해야 한다
완화할 필요가 없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