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피해자 부모의 절규
2011년 학교폭력을 견디다 못해 아파트에서 투신한 대구 중학생 권승민(당시 14세)군의 유년시절 모습. 어머니의 기억 속 아들은 늘 곰살맞은 막내였다. 임지영씨 제공.
평범한 교사였던 임씨에게는 이후 ‘피해자 엄마’라는 주홍글씨가 따라다녔다. 임씨의 아들 권승민(당시 덕원중 2년 14세)군은 목숨을 끊기 전 약 10개월 동안 동급생 2명에게 수시로 돈을 뺏기고, 구타를 당했다. 서울신문은 임씨와 승민군이 잠든 대구 팔공산 추모공원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임씨의 가슴엔 여전히 한이 서려 있었다. “승민이 담임 선생님이나 가해 학생들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질 못했어요. 장례 치를 때 가해 학생 부모들이 선처를 바란다며 수차례 찾아왔지만 정작 제 아이를 벼랑 끝으로 몬 아이들은 단 한 번도 보질 못했네요. 직접 와서 승민이에게 사과했다면 저는 애들 상대로 민사소송까지 걸진 않았을 것 같아요. 저도 교사잖아요.”
권승민군의 어머니 임지영씨가 승민군이 잠든 대구 팔공산 추모공원에서 당시의 사건을 설명하고 있다. 임씨는 피·가해자 낙인을 양산하는 현재의 학교폭력 제도가 반드시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준석 기자
임씨는 승민군이 학교에서 쓰던 사물함 정리도 직접 할 수 없었다. “유족이 시간을 갖고 할 수 있도록 해 주면 좋았을 텐데, 순식간에 정리해서 보내시더라고요. 승민이 물건들이 제대로인지 확인할 길도 없이….”
‘(아이가 베란다 위에 선) 그 순간, 난 왜 (아이의 곁에) 없었을까. 남의 자식 가르친다고 내 아이를 못 지켰구나’ 이런 생각이 평생 교단에 서 온 임씨 부부를 깊은 구렁 속으로 밀어넣었다. 임씨는 지금도 밤잠을 설친다고 했다. ‘남은 가족마저 잘못되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몇 번이고 잠을 깨 큰아들과 남편이 숨을 쉬는지 확인하는 게 일상이 됐다.
권승민군의 어머니 임지영씨가 대구 팔공산 추모공원에서 승민군의 유골함을 바라보고 있다. 도준석 기자
그간 겪었던 고통보다 남겨질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승민군의 유서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렸다. 또 다른 학교폭력의 희생자가 나와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학교폭력예방법이 전면 개정됐지만, 교육의 현장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승민군의 죽음 이후로도 극악한 학교폭력 사건은 계속됐다.
학교폭력을 견디다 못해 생을 마감한 권승민군의 유서.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과 학교폭력에 대한 걱정스러운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임지영씨 제공
임지영씨 제공
피해자 회복을 위한 기관은 여전히 전국에서 대전 해맑음센터가 유일하다. 사건 직후 교육부는 피해자 회복 기관을 전국적으로 설립하겠다고 했지만, 말뿐이었다. 다년간 학교폭력 피해 사례를 접해 온 임씨는 해맑음센터를 전국에 최소 4곳 이상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번이라도 학폭 피해를 당하면 위축이 돼요. 또다시 상처를 받을까 두려운 거죠. 일반 학생들한테 말도 잘 못 거는데, 어떻게 피해 전과 똑같이 등교를 할 수 있을까요.”
2011년 집단괴롭힘 사건으로 생을 마감한 권승민군의 어릴적 모습. 늘 환하게 웃는 아이의 웃음은 어느 순간 멈춰 있었다. 임지영씨 제공
“제도가 또 바뀐다고 현실이 달라질까요? 가정, 사회, 학교가 맞물려 있어요. 가정과 우리 사회는 학교에 모든 걸 미루지만, 학교에서는 전부 책임질 수 없죠. 인식이 바뀌어야 해요. 가정에서부터 자기 아이가 잘못한 게 있다면 충분히 훈육을 해야 합니다. 가해자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피해자에게 사죄할 때 관계가 회복될 수 있습니다.”
■인터랙티브 페이지는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schoolViolence/
본 보도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기획 취재 지원을 받아 진행했습니다.
기획취재부
2022-12-12 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