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끝 설레는 단맛, 자연 파괴의 쓴맛… 설탕, 씁쓸한 뒷맛

혀끝 설레는 단맛, 자연 파괴의 쓴맛… 설탕, 씁쓸한 뒷맛

유용하 기자
유용하 기자
입력 2024-01-12 02:38
업데이트 2024-01-12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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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윌버 보스마 지음/조행복 옮김/책과함께/624쪽/3만 5000원

중독성 커 과잉 섭취하면 질병
강제 노동과 기후 변화에 영향
생산 과정서 과학 기술 발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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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은 비만과 당뇨, 각종 대사질환의 원인으로 작용하지만 사람들은 설탕을 끊지 못하고 있다. 설탕은 계속 단맛을 찾게 만들고 뇌 활동을 둔화시키는 중독 현상도 유발시킨다는 연구 결과들도 많다. ‘2500년 동안 설탕은 어떻게 우리의 정치, 건강, 환경을 변화시켰는가’라는 부제처럼 ‘설탕’은 다른 농산물 원자재가 하지 못한 방식으로 세계를 구성하고 세계인의 식탁을 점령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설탕 대기업들은 생태, 환경을 중시하는 최근 소비자들의 성향을 반영해 바이오 연료 생산에 앞장서는 환경 친화 기업, 소비자의 건강을 생각하는 또 다른 감미료 개발 등 발 빠르게 ‘그린 워싱’에 나서고 있다. 펙셀스 제공
설탕은 비만과 당뇨, 각종 대사질환의 원인으로 작용하지만 사람들은 설탕을 끊지 못하고 있다. 설탕은 계속 단맛을 찾게 만들고 뇌 활동을 둔화시키는 중독 현상도 유발시킨다는 연구 결과들도 많다. ‘2500년 동안 설탕은 어떻게 우리의 정치, 건강, 환경을 변화시켰는가’라는 부제처럼 ‘설탕’은 다른 농산물 원자재가 하지 못한 방식으로 세계를 구성하고 세계인의 식탁을 점령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설탕 대기업들은 생태, 환경을 중시하는 최근 소비자들의 성향을 반영해 바이오 연료 생산에 앞장서는 환경 친화 기업, 소비자의 건강을 생각하는 또 다른 감미료 개발 등 발 빠르게 ‘그린 워싱’에 나서고 있다.
펙셀스 제공
분자식 C12H22O11. 단당류인 포도당과 과당이 글리코사이드 결합으로 만들어진 이당류. 금보다 귀한 물건이었다가 이제는 너무 흔해 빠진 물질.

바로 ‘설탕’이다.

설탕 포장지의 영양성분 표를 꼼꼼히 보면 당황스럽다. 설탕 100g을 기준으로 탄수화물(당분)이 99.98g을 차지하고 나머지 영양분은 거의 없다. 영양가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물질임에도 거의 모든 음식에 들어간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설탕은 충치와 비만, 성인 당뇨의 원인인 데다가 계속 소비할 수밖에 없도록 뇌를 중독 상태에 빠뜨리기도 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 국제비교사회사 교수인 저자는 이 책에서 수많은 질병과 사망의 원인으로 지목받는 설탕이 어떻게 인류의 식탁을 점령했고 정치, 사회, 환경을 바꿔 놓았는지를 치밀하게 추적한다. 저자는 “설탕 산업은 자본주의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다. 진보적이고 혁신적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업에 해가 되지 않는 한 사회적·생태적 문제에 냉담하다”면서 시종일관 설탕의 양면성을 꼬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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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첨가 물질인 설탕과 소금은 똑같이 하얀색 결정 상태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맛과 영양소, 제조 방법은 완전히 다르다. 소금은 바닷물을 햇빛으로 증발시키기만 해도 얻을 수 있고 암염은 캐내기만 하면 된다. 그렇지만 설탕은 사탕수수나 사탕무에서 즙을 짠 뒤 오랜 시간 끓여 증발시키고 정제하고 결정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요즘은 거대한 화학 플랜트에서 기계의 힘으로 이 과정을 처리하지만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설탕 생산의 모든 과정은 사람이 했다.

16세기부터 신대륙으로 노예로 끌려간 아프리카인 1250만명 중 3분의2가 사탕수수 재배와 설탕 생산 농장에 투입됐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노예제가 폐지된 뒤에는 아시아는 물론 유럽의 가난한 사람들이 계약 노동자로 고용됐다. 이들의 삶도 노예와 다름이 없었다. 20세기 초 하와이로 이민을 떠나 사탕수수 농장에서 힘든 삶을 살았던 조선인들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설탕 자본주의에서 노예제와 강제 노동이 전부는 아니었지만, 그것이 없었다면 현재 같은 설탕 소비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비판한다.

설탕 자본주의자들은 사탕수수 농장 확대를 위해 숲을 불태우고 나무를 베어 버리면서 비옥한 토양은 없애고, 수질을 오염시키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높였다. 설탕이 지구온난화를 부추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설탕 자본주의는 ‘그린 워싱’(위장환경주의)에도 열심이다. 소비자들이 생태 환경에 관심을 가지면서 설탕 기업들은 사탕수수가 바이오 에탄올 생산 원료라고 광고하는가 하면, 섬유질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하면 설탕이 잔뜩 들어간 식품과 음료에 섬유질을 ‘약간’ 첨가하는 식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설탕 자본주의의 추악함을 비판하지만 과학기술 발전을 가져온 창의력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한다. 사탕수수의 수확량을 늘리고 설탕 생산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최신 과학기술을 앞장서서 활용하고 과학자들의 연구를 지원했다는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과학의 발전과 기술 확산에 도움을 줬다는 부분에서는 실소가 나온다.

저자는 설탕 산업이 팽창하는 동안 환경, 건강, 인도주의에 관련된 문제들이 누적돼 점점 풀기 어려운 문제가 됐다고 지적했다. ‘설탕 세계의 과잉 생산과 착취, 과잉 소비라는 복잡한 매듭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이 깨어나 기업은 물론 정부와 입법부를 압박해야 한다’는 마지막 조언은 용두사미, 사족 같아 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느낌이다.
유용하 기자
2024-01-12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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