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21일 아사히신문이 정부 관계자를 인용한 데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지난 15일 한국 대통령실이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발표하자 “그렇다면 거꾸로 만나지 말자”고 말했다. 한일 정상회담이 정식으로 결정됐다면 한국과 일본 측이 동시에 발표를 하는 게 외교적 관례이지만 한국 측이 성급하게 발표하자 기시다 총리가 불쾌감을 보인 것이다.
앞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지난 15일 “유엔총회에서 한미 정상회담과 한일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해놓고 시간을 조율 중”이라고 말했다. 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일본 측이) 서로 만나는 것이 좋겠다고 흔쾌히 합의됐다”고도 했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즉각 항의했다. 그날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총리 뉴욕 방문의 구체적인 일정은 현시점에서 전혀 결정되지 않았다”며 사실상 한국 발표를 부정했다. 이어 외무성은 “(양국의) 신뢰 관계에 관련된 것으로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발표는 삼가하길 바란다”며 한국 측에 항의하기까지 했다.
한일 정상회담 일정이 조율 중이지만 일본 내에서는 기시다 총리가 불편함을 보인 상황에서 한일 정상이 만나 회담을 하더라도 30분 내의 단시간에 그칠 것이라는 분위기가 강하다. 한일 정상회담 개최 여부의 핵심인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을 위한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매각 최종 판결을 앞두고 일본 측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측이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한일 정상회담이 이뤄지게 되면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논의에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정상회담까지 하는 등 한국 측에 끌려다니고만 있다는 자민당 내 보수파의 반발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서려는 기시다 총리가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려고 해도 국내 정치 상황을 고려해 짧은 시간 내 만나는 방향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신문은 “기시다 총리의 당내 기반이 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각 지지율까지 급락하고 있기 때문에 한일 정상회담을 더욱 신중하게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도쿄 김진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