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민 ‘일당백’ 유튜버
말구유에서 난 갓난아기가 세상을 구원한다는 극적 서사답게 성탄절의 주인공은 어린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역사는 딴판이다. 종교개혁으로 등장한 신교도에게 크리스마스는 가톨릭의 날이었다. 예수가 아니라 포도주의 신 바쿠스를 추앙하는 폭음과 폭식의 향연이며 악의 축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19세기 중엽까지도 과식과 만취의 전통은 계속 이어졌다. 아이를 위한 날은 없었다.
성탄절을 나눔과 베풂의 축일로 자리잡게 한 일등 공신은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다.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이 개과천선해서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패권국가로서의 물적 토대도 내부적 자원 배분에 여유를 갖게 했다. 아무튼 하나의 중편이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축제를 만들었다. 하인에게는 상자에 음식이나 돈, 선물을 담아 주고 휴일을 줬다. 빈민들은 교회에서 기부품으로 채워진 박스를 선물받았다. 무엇보다 어른에서 어린이로 권력이동이 이뤄졌다. 크리스마스 트리, 산타클로스, 카드가 도입되고 흥겨운 캐럴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선물과 정찬이 피날레를 장식했다. 서구에서 가장 중요한 가족 행사로 위상이 승격된 것은 이때부터다. 오랜 관습으로 여겨졌던 크리스마스가 사실은 소외된 아이와 가난한 이웃을 대접하기 위해 새로 ‘만들어진 전통’인 것이다.
우리 사회의 크리스마스는 바쿠스에 가깝다. 종교 행사나 가족 모임이 아니라 환락의 파티로 변용되곤 했다. 광복 직후부터 1982년까지 실시한 야간 통행금지를 예외적으로 풀어 주는 드문 날이었기 때문이다. 공권력의 통제와 감시에 억눌렸던 감정들이 해방되다 보니 대규모 인파가 거리로 몰려나오면서 광란의 밤을 보냈다. 언론인 민병욱에 따르면 가장 떠들썩했던 성탄절은 1964년이다. 그해 서울 인구는 약 350만명인데 24일 오후부터 명동과 종로에 35만 인파가 흘러넘쳤다. 지금 고희를 훌쩍 넘긴 당시 청소년들은 뿔피리를 불고 기괴한 복장과 가면으로 시민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한반도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수백년이 지난 만큼 19세기 영국처럼 성탄절을 새롭게 조명할 때가 아닌가 한다. 예수의 출생은 양극화와 다문화 문제가 대두된 오늘날 하나의 실마리다. 가장 낮은 곳, 마구간에서 독생자는 태어났다. 먼 곳에서 온 동방박사가 탄생을 축하했다. 약자와 이방인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의미가 아닌가. 예수는 처음부터 가난한 사람과 나그네에게 열려 있는 것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사랑과 평화의 세상은 오지 않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아니라 있어야 할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눈물의 골짜기’를 통과하는 속인의 의무일 것이다.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영화 ‘제7의 봉인’은 어떤 인생도 아무런 의미 없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선포한다. 고달픈 삶에서 터져 나오는 고통과 슬픔의 눈물을 하늘에서 내려온 빗물이 씻겨 준다는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져야 하는 자들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든 이슬을 닦아 주실 구원의 크리스마스에 다시 기대를 건다.
2022-12-23 2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