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간 남 돕던 꼴찌 ‘역전 드라마’

11년간 남 돕던 꼴찌 ‘역전 드라마’

임병선 기자
입력 2018-07-30 22:26
수정 2018-07-30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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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세 토머스, 투르 드 프랑스 첫 우승 동료 사이클 우승할 때 물병 건네던 그 지옥 같은 산악 훈련으로 파워 키워 4연패 노리던 영국 동료 프룸 제쳐

저주 깨나 들었던 게라인트 토머스(32·영국)가 마침내 투르 드 프랑스 정상을 밟았다. 2007년 첫 출전 때 141명 완주자 가운데 140위였는데 11년 뒤 발아래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29일(현지시간) 파리 개선문 앞 결승선을 어깨 걸고 통과한 팀 스카이 동료이며 네 차례나 정상에 올랐고 이번 대회 4연패를 노리던 크리스 프룸(33·영국)도 종합 3위로 멀찍이 물러났다. 프룸이 우승했다면 에디 메르크스(벨기에)와 대회 최다 우승 타이(5회) 대기록을 쓸 수 있었다.

팀 스카이의 총장이며 레전드인 데이브 브레일스퍼드는 늘 초반에 잘나가다 계속 미끄러지는, 다른 이들을 위해 달리는 운명을 짊어진 것 같은 그를 뭐든 할 수 있는 선수라며 안타까워했다. 2년 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로드레이스 마지막 구간에서 추락했고, 지난해 트루 드 프랑스에서도 두 차례나 사이클에서 낙차했다. 같은 해 5월 지로 디탈리아에서도 초반 정말 잘나가다 후반 추락하고 말았다.

그의 우승은 영국 선수로는 세 번째, 웨일스 출신으로는 처음이다. 2012년 브래들리 위긴스 경이 처음 우승했을 때도, 프룸이 3연속 포디엄 정상에 설 때도 그는 돕기만 했다. 한번은 골반을 다친 채로 20일이나 안장 위에 앉아 해냈다.

첫 출전한 트루 드 프랑스에서 중간에 팀 승용차에 올라 동료들에게 물병을 건네고서야 펠로톤 행렬에 돌아와 완주할 수 있었다. 자전거에 부착된 컴퓨터가 오르막을 너무 천천히 올라 레이스를 끝낸 것으로 오판해 자동 멈춤 되는 수모도 겪었다.

변화는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일어났다. 체지방과 쓸데없는 근육이 빠지면서 파워는 더 강해졌다. 테네리프의 마운틴 테이드를 수도 없이 올랐다. 동료인 위긴스와 프룸, 팀 스카이 코치들, 영양사들로부터 모든 것을 흡수했다. 그렇게 젊은 선수들을 어깨 너머로 흘깃거릴 나이에 처음 그랜드 투어 정상을 밟았다.

그리고 이번 대회 3주 내내 원숙한 기량으로 자신의 시대가 왔음을 선언했다. 빈센초 니발리(콜롬비아)와 종합 2위 톰 두물랭(네덜란드), 프룸 등이 크고 작은 사고를 당한 운도 작용했다. 하지만 산악 구간을 꾸준히 훈련한 성과가 빛을 봤다. 또 대회 3주 전 타임트라이얼 코스를 미리 달려 본 것도 도움이 됐다. 팀 스카이는 지난 7년 동안 네 차례 연속 등 여섯 차례 우승 선수를 배출했다.

BBC는 그가 다른 그랜드 투어를 우승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랜스 암스트롱(미국)과 대척되는 우승자로 남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늘 상냥하고, 으스대지 않고, 다른 이들을 먼저 칭찬하는 선수로 말이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2018-07-3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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