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김정일 부검에 대한 단상/유영규 온라인뉴스부 기자
지난 17일 사망한(것으로 발표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 대해 부검이 이뤄졌다. 아무리 사인규명을 위해서라지만 북쪽 정권이 그토록 칭송하던 ‘위대한 영도자’의 몸에 칼을 댔다는 사실은 많은 남쪽 사람들을 어리둥절케 했다. 국내 많은 전문가들은 “두루뭉술하게 넘긴다면 암살이나 쿠데타 등 음모론이 확산될 수 있으니 화근을 없애려고 부검을 했을 것이다.”는 등 분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는 다분히 정치공학적인 관점의 해석이다.북한 조선중앙TV가 20일 오후 금수산기념궁전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을 공개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검시나 부검에 대한 법률이 발달해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소련, 중국의 영향을 받은 북한은 이미 1950년대부터 부검·검시에 대한 법률을 제정해 시행 중이다. 이 법은 외인사(外因死)와 사인불명 죽음에 대해선 반드시 검시나 부검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의혹이 있는 죽음을 빠짐없이 조사할 수 있도록 한 검시 관련 법규가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지 않다. 주검을 다루는 법 제도만큼은 최악의 인권국가인 북한보다 뒤처져 있는 것이다. 부끄러운 현실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인우보증(隣友保證) 제도가 아직 남아 있다. 예전에 의사가 드물던 시절, 동네 사람 몇몇이 보증을 서면 죽은 사람을 그냥 땅에 묻어도 좋다고 허가한 제도다.
이 제도는 범죄에도 악용된다. 이웃의 보증만으로 자연사 처리될 뻔했던 2009년 4월 충남 보령 청산가리 살인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이 제도 때문에 한해 1만 7000명이 아무 확인절차 없이 사망처리된다. 김정일이 타살된 건 아닌지 의심하기 전에 오히려 매년 검증 없이 장례가 치러지는 대한민국 국민 중 억울한 죽음이 없는지 되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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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4 2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