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병원 아니면 치료길 캄캄
교수들까지 떠나면 희망 없어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서를 내면서 시작된 의료대란이 어느덧 한 달째에 접어든 가운데 지난달 29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로비에서 만난 김미영(가명)씨와 가족들이 입원할 병원을 수소문하고 있는 모습. 김씨는 말기 암 환자였지만 의사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예정된 입원이 거부당했고 9일 후인 이달 9일 숨졌다.
김중래 기자
김중래 기자
이른바 수도권 ‘빅5’(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 병원과 연계된 의대 교수들이 집단 ‘줄사직’을 예고하면서 환자들의 속은 타들어 간다. 특히 정부가 20일 2025학년도 의대별 정원 배분 결과를 공식 발표하면서 2000명 증원을 확정해 의정 대화의 불씨가 꺼지자 중증·희귀병 환자와 가족들은 더 큰 절망에 빠졌다. 난도가 높은 치료 특성상 상급종합병원에 의존하던 이들은 빅5 병원 교수들까지 이탈하면 의료재앙이 현실화될 것을 우려했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장은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빅5 병원 교수들이 단체로 사직서를 낸다는 것은 중증 질환자들을 포기한다는 뜻”이라며 “항암치료를 앞둔 환자들은 ‘동네 병원에서 항암제를 구할 수도 없는데 앞으로 어떡하냐’고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이어 “환자들은 전공의가 의료 현장을 떠날 때부터 마음 졸이며 사태가 해결되기를 기다렸지만, 대형병원 교수들까지 환자 목숨을 볼모로 잡는 것 같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고 했다.
김재학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장은 “희귀질환은 전공의보다 교수가 진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전공의 집단행동 때는 피해가 적었다”면서 “하지만 교수들까지 병원을 떠나게 되면 환자들이 치료받을 수 있는 마지막 통로가 사라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희귀·난치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정확한 진단명과 치료를 받기 위해 전전긍긍하다 결국 찾아간 곳이 빅5 대형병원”이라며 “일반 병원에서는 우리 질환에 대해 잘 모른다. 정부가 2차 병원을 상급종합병원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했지만, 그곳에서 우리가 진료받기엔 여건이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양성동 대한파킨슨병협회장은 “의료대란 사태 이전에도 파킨슨 관련 의사가 부족해 치료받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남아 있는 교수들까지 이탈하게 되면 우리 환자들이 겪는 피해는 훨씬 커지게 된다”고 말했다. 양 회장은 이어 “극적 합의를 기대했는데 허망하다”면서 “이제는 의료대란의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 정말 의문”이라고 했다.
2024-03-21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