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못 본단 생각에 불 지른 ‘딸바보’…국민참여재판서 집유

딸 못 본단 생각에 불 지른 ‘딸바보’…국민참여재판서 집유

입력 2015-06-12 08:59
업데이트 2015-06-12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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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6년 기소했으나 배심원단은 정상참작 의견

”저도 아버지의 애정을 받고 자랐지만 제 여동생이 받은 것 만큼은 아녔습니다.”

9일 서울북부지법 601호 법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박모(20)군은 아버지의 딸 사랑을 증언하며 이같이 말했다.

일용직 노동자인 박모(56)씨는 서울 도봉구의 한 다세대주택에 살며 아들 두 명과 어린 딸 한 명을 둔 평범한 가장이었다. 특히 박씨는 장성한 두 아들과 터울이 지는 9살 고명딸을 가장 귀여워했다.

하지만, 지난해 박씨가 10월 아내를 때리면서 비극이 시작됐다.

아내는 이틀 만에 따로 살겠다며 집을 나갔고 곧이어 딸도 자신의 거처로 데려갔다.

비슷한 시기에 박씨는 보증금 9천800만원의 전세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고 있던 거주지가 사실은 보증금 3천만원에 다달이 40만원을 내야 하는 월셋집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박씨는 올 1월22일 전세보증금 문제를 두고 전화로 언쟁을 벌이던 중 아내로부터 “앞으로 우리 아기(딸) 볼 생각도 하지 말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들었다.

박씨는 이날 저녁 만취 상태로 주유소에서 등유 20ℓ를 사 들고와 딸의 책상을 비롯해 집 곳곳에 등유를 뿌리고는 불을 질렀다.

이 화재로 총 6세대가 살고 있던 지상 2층 높이 다세대 주택 중 박씨 가족이 살던 2층 전체가 불에 탔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총 수리비는 총 6천100여만원에 달했다.

변호인은 최후 변론에서 “피고인은 알코올 의존증과 우울증이 있어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고 호소했다. “집행유예를 받아야 조속히 의료기관에서 이 같은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구속 상태의 박씨는 법정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범행을 모두 시인하고 “잘못했다”며 용서를 구했다.

검찰은 박씨를 현주건조물 방화 혐의로 기소하고 징역 6년을 구형했지만, 배심원단의 판단은 달랐다.

12일 법원에 따르면 배심원 7명 전원은 박씨가 유죄라는 점은 인정했다.

다만, 박씨가 아내와 전화로 심하게 말다툼을 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나머지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을 참작해 1명을 제외한 모두가 집행유예 3년 의견을 냈다.

특히 화재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집주인이 선뜻 박씨를 용서한 점이 요인으로 작용했다.

법원도 배심원들의 의견을 존중해 박씨에게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서울북부지법 형사13부(이효두 부장판사)는 “핵심 피해자인 집주인이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고 피고인이 특별한 전과가 없는 점, 범행을 반성하는 점 등 정상에 참작할 바가 있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판결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끝까지 방청석을 지킨 그림자배심원들도 재판이 끝나자 “사람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며 자신들도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 의견을 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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