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인 배상 소송]“생전에 정부 배상 받았으면”

[한센인 배상 소송]“생전에 정부 배상 받았으면”

입력 2015-05-27 07:11
업데이트 2015-05-27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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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한센인 대부분 고령…”차별·천대…자식도 못 낳게 했지요”

”사람대우를 못 받고 비정상으로 살아왔고 몇 안 되는 자식들마저 스스로 떠났어. 자격지심에 여태껏 버스나 기차를 타보지 못하고 이곳을 벗어나지 못한 노인들도 있어….”

서울 중앙지방법원은 이달 20일 “강제 낙태를 당한 한센인과 강제 단종(정관수술)을 당한 한센인에게 각각 4천만원과 3천만원씩을 국가가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소식을 들은 전북 익산시 왕궁면의 집단 이주농장에 사는 한센인들은 지난 세월의 고생, 차별, 천대를 떠올리며 작은 소리로 흐느꼈다.

왕궁에는 1948년 국립병원 ‘소생원’이 건립돼 한센인 격리 치료와 낙태·단종수술이 이뤄졌다. 1961년에는 한센인 정착지가 조성돼 많게는 3천여명이 수용됐다고 주민들은 전한다.

현재 왕궁에 사는 900여명의 한센인들은 대부분 소록도에 살다가 1974년을 즈음해 일대 정착촌인 익산농장, 금오농장, 신촌농원으로 이주한 사람들이다. 집단 이주한 지 60년이 넘어 상당수가 숨지고 현재는 대부분 80대 이상이 양로원에서 국가 지원금에 의존해 살고 있다.

대부분 강제수용자인 한센인들은 ‘유전’을 이유로 자식을 낳지 못하게 하려는 국가에 의해 강제 낙태·단종수술을 받았고, 외부와는 철저히 격리된 채 돼지나 닭을 키우며 생계를 이어야만 했다.

병이 유전되지 않는다고 판명된 1990년 중반에야 정부가 격리나 차별을 해제했지만, 그들은 그때까지 살아오던 삶과 비슷하게 지금까지 살아왔다. 서로 의지하며 외부에 의한 수모, 차별, 멸시는 물론 자격지심에 의해 스스로를 가두고 삶을 버텨왔다.

이들 대부분은 자식이 없다. 다만 소록도에서 낳은 자녀가 있는 몇몇 가정에서도 자녀 대부분이 천대를 못견디거나 한센인 부모 때문에 취직이나 결혼이 어려워 가출했다. 어쩌다 버티거나 돌아온 자녀도 부모를 따라 축산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정부가 지정한 분교에서만 초등학교를 다니고 중학교에서도 ‘농장에 산다’는 이유로 차별과 멸시를 많이 받았다. 외지에서 숙박도 안 됐고 심지어 차도 태워주지 않아 걷기 일쑤였다.

정착촌의 부모이건 자식이건 주민등록등본에는 ‘나병’이라고 찍혀 다른 지역으로 ‘퇴거’가 되지 않았다. 설령 이사한다 해도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아 보육·취학을 포기해야 했다.

그들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도 가지 못했다. 20년 전까지도 목욕탕, 극장, 영화관, 운동장 등 대중이 모이는 곳에는 아예 출입이 금지됐다.

이것이 자격지심과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로 작용해 여태껏 왕궁을 한번도 벗어나지 않거나 버스나 열차도 타보지 않은 노인들이 제법 있다고 한다.

박정준(가명·77) 할아버지는 14살에 나병이 들어 소록도에서 결혼하고 아들을 낳았지만 양육을 못하게 해 1976년 금오농장에 정착했다. 소록도에서 단종이나 낙태를 하고 온 사람들과 함께 돼지를 키우며 살았다.

박 할아버지의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성인이 된 후 집을 나간 후 의절하다시피 살았다. 결혼을 했지만 이혼해 지금은 할아버지가 손주들을 10년째 키우고 있다.

어릴적 병을 얻은 송은진(87·가명) 할머니는 20대 초반에 소록도에서 결혼해 아기를 가졌지만 강제로 낙태수술한 후 애들을 낳지 못했다. 남편과 함께 1974년 금오농장으로 이주해 돼지를 키우면 힘들게 살면서 외지에 나가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20여 년 전에 남편과 사별한 뒤 양로원에서 거주하는 송 할머니는 지금까지의 삶이 ‘죽을 정도의 고생’이라며 아픔을 토해냈다.

윤세창(72) 한센총연합회 전북지부장은 “왕궁 지역의 한센인에게 가장 큰 고통은 자식을 낳지 못하고 또 낳아도 정상적으로 키우지 못해 가정이 파탄난 것”이라며 “정부가 그들을 격리시켰고, 자신들은 스스로를 고립시켰으며 자격지심에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었다”고 말했다.

윤 지부장은 “승소 소식에 주민들은 ‘조금이라마 명예를 회복한 것 같다. 살아생전에 정부 배상금을 받아 아무 준비도 못 한 노후생활에 도움이 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생존자 대부분이 70대 후반에서 90대인 분들인 만큼 정부가 항소를 포기해 배상이 빨리 이뤄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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