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화 전북 고창지역연구소장이 동학농민군이 불렀다는 ‘당뫼골민요’를 18일 공개했다.
이 민요는 이 소장이 고창군 공음면 당뫼골의 주민들을 만나 채록한 것이다.
당뫼골은 1894년 음력 3월에 동학농민혁명 지도부가 봉기를 선언하는 무장포고문을 발표한 곳으로, 현재의 지명은 공음면 구수마을이다.
민요는 막대를 잡은 봉사와 곰배팔이 길잡이가 선창과 후창을 이어가는 형식으로, 전통적 리듬인 3·4조 가락을 갖고 있다.
무장포고문이 발표된 당뫼골에 관군의 경계를 뚫고 많은 사람과 말이 모여들었고 동학농민군 대장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소장은 “당시 농민군과 주민이 폭넓게 불렀던 노래여서 자연스럽게 후손들에게 전승된 것 같다”며 “지금까지 확인된 동학 농민군의 민요가 많지 않은 만큼 문화적 가치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에서도 당뫼골민요가 동학농민군의 민요로 확인될 경우 의미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동학 전문가는 “농민군의 민요였는지를 확인하는 학계의 검증작업이 필요하다”며 “만약 농민군의 민요가 맞는다면 동학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이 민요는 이 소장이 고창군 공음면 당뫼골의 주민들을 만나 채록한 것이다.
당뫼골은 1894년 음력 3월에 동학농민혁명 지도부가 봉기를 선언하는 무장포고문을 발표한 곳으로, 현재의 지명은 공음면 구수마을이다.
민요는 막대를 잡은 봉사와 곰배팔이 길잡이가 선창과 후창을 이어가는 형식으로, 전통적 리듬인 3·4조 가락을 갖고 있다.
무장포고문이 발표된 당뫼골에 관군의 경계를 뚫고 많은 사람과 말이 모여들었고 동학농민군 대장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소장은 “당시 농민군과 주민이 폭넓게 불렀던 노래여서 자연스럽게 후손들에게 전승된 것 같다”며 “지금까지 확인된 동학 농민군의 민요가 많지 않은 만큼 문화적 가치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에서도 당뫼골민요가 동학농민군의 민요로 확인될 경우 의미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동학 전문가는 “농민군의 민요였는지를 확인하는 학계의 검증작업이 필요하다”며 “만약 농민군의 민요가 맞는다면 동학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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