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주한미군 통금 ‘눈 가리고 아웅’

이태원 주한미군 통금 ‘눈 가리고 아웅’

입력 2011-12-25 00:00
업데이트 2011-12-25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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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병 피해 숨으면 그만”…첫달보다 단속 느슨해져

지난 23일 0시 53분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턴 호텔 앞. 여자친구와 걸어가던 백인 남자가 순찰 중인 미군 헌병을 보고 갑자기 발길을 돌려 달아났다.

헌병들이 쫓아가 신분증을 요구하자 심한 술 냄새를 풍기며 거부한 그는 신원조회 결과 미군으로 확인돼 용산기지로 이송됐다.

주한미군이 잇따른 미군범죄에 대한 대책으로 10월 7일 시작한 야간 통행금지가 석 달째 계속되고 있지만 통행금지 조치를 위반하는 미군이 많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군이 자주 찾는 이태원 일대의 유흥업소 상인들은 미군이 통행이 금지된 평일 자정부터 오전 5시 사이(주말과 공휴일은 오전 3~5시)에 단속을 피해 몰래 돌아다니며 24시간 내내 출입이 전면 금지된 가게에도 버젓이 드나든다고 주장했다.

술집 매니저 이모(35.여)씨는 “업주들이 방화사건 이후 웬만하면 통금 시간에 안 받으려고 하지만 들어오는 미군들이 종종 있다”며 “몇몇은 찜질방 같은 곳에 들어가 숨어 있다가 통금이 풀리면 다시 나와 술집을 돌아다닌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술집 주인은 “출입금지 업소 중에 미군을 입장시키는 곳이 알게 모르게 많다”며 “술 취한 미군들이 밤에 돌아다니면 여종업원들이 억지로 끌고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통행금지 조치를 위반하는 미군에 대한 단속이 첫 달에 비해 많이 느슨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이씨는 “헌병들이 요즘에도 순찰하기는 하는데 처음 시작할 때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고 가게 안까지 들어와서 확인하는 경우는 어쩌다 일주일에 한 번일 정도로 뜸해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23일 단속에 나선 미군 헌병은 40여 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가게 20여 곳에 대한 순찰을 마쳤으며 불이 꺼져 있거나 문이 닫힌 곳은 확인하지 않았다.

성매매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로 2003년 3월에 출입금지 업소로 지정된 한 가게는 커튼이 처져 있고 불이 꺼져 있었으나 머리 짧은 백인이 문을 두드리자 들어오라고 재촉했다.

트렌스젠더 클럽의 종업원 P씨(28)는 “요즘에는 CCTV가 없는 가게가 없기 때문에 안에 있다가 헌병이 뜨면 다 미리 알고 도망간다”고 설명했다.

출입금지 업소가 밀집된 골목에서 만난 미군 L씨와 J씨는 “가끔 취해서 술집에서 늦게 나오지만 운 좋게 안 걸리거나 숨으면 된다”며 “뭐 걸린다고 죽는 것도 아니다 보니 통금을 어기는 애들이 많다”고 말했다.

연말 분위기를 즐기려고 이태원을 찾은 미군들은 통행금지 조치가 계속되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다. 주한미군은 지난달 2일 통행금지 기간을 내년 1월 6일까지로 연장했다.

한국에 들어온 지 4개월 된 미군 K씨(26)는 “범죄자 몇 명 때문에 밤마다 죄인처럼 묶여 있는 것이 옳으냐”며 “통행금지 시간에 몰래 다니는 병사들이 당연히 있을 테고 나도 걸릴 위험만 없으면 그러고 싶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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