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 보는 여자 동양화 읽는 남자 通했다

서양화 보는 여자 동양화 읽는 남자 通했다

입력 2011-11-05 00:00
업데이트 2011-11-05 00:0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이야기를 담은 그림… 편지로 주고받은 ‘다, 그림이다’ 출간

요즘 화제인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서 불륜의 사랑이 불붙는 곳은 남녀 주인공이 우연히 마주친 미술관이었다. ‘다, 그림이다’(손철주·이주은 지음, 이봄 펴냄)의 저자 이주은 성신여대 미술교육과 교수는 “그림을 보면 나를 충족시키는 느낌이 든다. 그런 사람들이 팁을 얻으면 훨씬 재미있게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며 미술 관련 서적의 꾸준한 인기 요인을 설명했다. ‘다, 그림이다’는 동양 미술에 대한 대중적인 글쓰기를 해오고 있는 출판사 학고재의 주간 손철주씨와 서양미술사를 전공한 이 교수가 나눈 편지다.

이미지 확대


●물과 기름 같은 동서양 미술 접점 찾아내

우리나라에서는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가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의 ‘한국미술사’보다 훨씬 많이 팔렸다. 게다가 일본인과 한국인들은 인상파 그림만 좋아한다는 선입견도 있다. ‘다, 그림이다’는 이런 편견에 맞서 물과 기름 같았던 서양 미술과 동양 미술을 솜씨 좋게 한데 녹여냈다.

그 소개는 작가 김훈이 맡았다. 김훈은 ‘다, 그림이다’의 서문에서 경주 황룡사 벽에 ‘노송도’를 그렸더니 새들이 날아들어 부딪쳐 죽었다는 신라의 화가 솔거를 언급한다. 그리고 “화폭 안과 밖에서 이야기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고 끝맺는다. 그 끝없는 이야기를 손 주간은 “움켜쥘 수 없는 것을 움켜쥐려는 화가의 속내를 우리 옛 그림에서 살펴보려 한다.”며 옛 시로 풀어낸다. ‘세상과 그림, 어느 것이 옳은가 /봄볕 내려오니 피지 않는 꽃이 없구려’.

이 교수는 “낮에 스치듯 바라본 그림이 간혹 의지와 상관없이 심연을 흔들어 놓을 때가 있다. 그럴 땐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것 중 하나가 동요를 일으키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게 만들곤 한다.”며 그림이 인간에게서 얼마나 많은 상상력과 이야기를 끌어내는지 일러준다.

이미지 확대


●명화보다 인생의 키워드 담은 그림 찾아 주고받아

책에 실린 그림들은 익히 알려진 명화보다는 이야기를 담은 그림들이 많다. 저자들은 미술사에 많이 언급되는 걸작보다는 뻔히 아는 인생의 키워드와 자잘한 이야기를 간직한 그림을 골랐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책에 소개되는 첫 번째 그림은 2009년 타계한 미국 화가 앤드루 와이어스의 ‘결혼’(큰 그림)이다. 제목은 ‘결혼’이지만 턱까지 이불을 당겨 덮은 노() 부부는 마치 시체 같다. 그림을 소개하는 이 교수는 “와이어스도 어느 날 아침 이웃집에 들렀다가 노 부부가 창백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 그 인상이 강하게 남아서 그림을 그렸다.”고 설명한다.

‘결혼’에 대한 손 주간의 화답은 18세기 조선의 선비화가 능호관 이인상의 ‘와운’(작은 그림)이다. 손 주간이 ‘결혼’과 ‘와운’에서 공통으로 읽어내는 것은 ‘비장한 아름다움’이다. ‘와운’은 조선시대 옛 그림치고는 무척 낯설다. 부글부글 끓는 먹장구름을 화폭 전체에 담았다. 화가 이인상이 한쪽에 쓴 글(‘시를 쓰고 싶었지만 술에 취한 뒤 글씨를 쓰니 구름이 덩어리진 듯합니다. 바로 이 그림과 같으니 웃음거리외다.’)로 보아 ‘와운’은 술 마시고 그린 ‘취필’(醉筆)이다.

이미지 확대
저자는 이인상의 삶이 심장에서 피를 토하듯 눈물졌다고 설명한다.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모두 잃는, 세상 어디에 비길 수 없는 비극인 참척을 겪었고 아내마저 먼저 보냈다. 하지만 “슬픔을 노골화하지 않고 눌러 담는 심정이 애처롭도록 아름답고, 그 애처로운 아름다움의 에두른 표현이 곧 비장미”란 손 주간의 해설이 붙는다.

●동서양 미술 소통… 인류의 공통성 찾아내

지난달 말에 끝난 간송미술관의 가을 전시에서는 4년 만에 세상 구경을 나온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려고 주말이면 두 시간 넘게 기다릴 정도로 인파가 몰렸다.

손 주간은 혜원 신윤복을 흉내 낸 작자 미상의 미인도를 소개한다. 혜원의 미인이 변비나 치질에 시달리는 안색이라면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미인도는 남자 마음을 녹일 듯한, 배시시 웃는 입술이 압권이다. 조선 미인의 수작에 이 교수는 어깨에 날개를 달고 화살로 심장을 찌르려는 아기 천사를 그린 아돌프 윌리엄 부게로(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의 ‘에로스를 막는 소녀’로 답한다.

동서양 그림의 소통을 시도한 책은 예술로 삶이 얼마나 풍요로워지는지 느껴 보라며 손짓한다. 미술관에서 불륜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1만 75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2011-11-05 18면
많이 본 뉴스
공무원 인기 시들해진 까닭은? 
한때 ‘신의 직장’이라는 말까지 나왔던 공무원의 인기가 식어가고 있습니다. 올해 9급 공채 경쟁률은 21.8대1로 3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공무원 인기가 하락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낮은 임금
경직된 조직 문화
민원인 횡포
높은 업무 강도
미흡한 성과 보상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