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최초의 性 희곡 베일 벗다

한반도 최초의 性 희곡 베일 벗다

입력 2011-11-05 00:00
업데이트 2011-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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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상기】 동고어초 지음 김영사 펴냄

‘저는 이 따위 여자가 아니랍니다. 달은 지고 등불은 사위어 수놓은 휘장 안으로 불빛은 쓸쓸히 어른거리기도 하고, 제비가 재잘대고 꾀꼬리가 노래하여 비단창이 요랍스럽기도 하군요. 이럴 때 남모를 걱정과 숨겨진 한이 유달리 솟구쳐 오르지요. 하지만 그런 줄 누가 알겠어요’(손으로 고운 뺨을 받치고 말없이 내다본다.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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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헌종 6년)의 일이다. 한국 고전문학사에서 이옥(李鈺)의 ‘동상기’(1791)에 이은 두 번째 희곡 ‘북상기’에 나오는 대목이다. 실로 야릇하기 그지없다. 북상기(北廂記)라 함은 뒤채에서 일어난 일을 말한다. 북상기는 한국판 금병매로 평가되는 본격 에로물로 그 지역적 배경이 강원도 홍천이라 더 애틋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性) 희곡으로 19세기 조선 문학의 지형도를 바꾼 작품으로 평가받는 ‘북상기’(동고어초 지음, 안대회·이창숙 옮김, 김영사 펴냄)가 번역 출간됐다. 2007년 고서판매상에서 성균관대 한문학과 안대회 교수에 의해 발굴된 이후 학계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우리 문학사의 기술 일부를 다시 쓰게 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아 오다 이번에 세상에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학자들에 의하면 ‘북상기’는 백화문(白話文)으로 쓰인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희곡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희곡의 내용과 묘사가 가히 충격적이라는 것이다. 18세 기생과 61세 선비의 그로테스크한 사랑을 극화했으며 그들이 벌이는 성행위 묘사가 놀랍다. 예를 들면 이렇다.

순옥:(혼자 생각한다)그가 오는 게 되레 좋아. 여기 오기만 하면 그의 혼백을 송두리째 뺏어버려야지!(밤 전투를 치를 준비를 한다)

여기서 순옥은 여주인공이다. 선비 감낙안과 온갖 외설스러운 정사를 몇날 며칠 벌이는 장면이 유별나게 다가온다. 이렇듯 ‘북상기’는 내용과 형식면에서 19세기 중반에 출현한 다른 작품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선 조선시대 문학의 영역을 크게 확장시킨 획기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다. 다른 문학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었던 극문학의 위상을 단숨에 만회한 작품이다. ‘동상기’에 이은 ‘북상기’ 그리고 뒤이어 발굴된 ‘백상루기’로 조선후기 문학사는 세 편의 극본을 소유하게 됐기 때문이다. ‘북상기’는 허구 문학이면서도 기녀의 생활상을 비롯해 19세기 전반 사회상과 사회제도 등을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 흥미를 끈다. 1만 3000원.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2011-11-0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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