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성추행 논란 100일…학교는 침묵

고대 성추행 논란 100일…학교는 침묵

입력 2011-09-02 00:00
업데이트 2011-09-02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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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본관 점거 사태 때는 징계 내용 적극 알려

고려대 의대 집단 성추행 사건이 일어난 지 100일이 넘었다.

가해 남학생들은 모두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으나 학교 측은 징계 결과를 여전히 공개하지 않은 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학교 안팎에서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 가해자들을 반드시 출교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함께 학교 당국의 미온적인 태도를 비난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사건 발단 = 2일 경찰 등에 따르면 고려대 의대에 재학 중인 박모(23)ㆍ한모(24)ㆍ배모(24)씨 등 3명은 지난 5월21일 동기 A(여)씨와 경기도 가평으로 여행을 갔다.

이들은 당시 묵은 민박집에서 A씨가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사이 A씨의 신체를 만지고 이튿날 아침까지 휴대전화와 디지털카메라로 A양의 몸을 23차례 촬영했다.

A씨는 이튿날 경찰과 여성가족부 성폭력상담소 등에 피해 사실을 신고했고 학내 성폭력 문제를 담당하는 양성평등센터에도 이 사실을 알렸다.

가해 남학생 3명은 경찰 조사에서 범죄의 중대성과 증거 인멸 우려가 인정돼 구속됐고 현재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이들 가운데 2명은 혐의를 인정했으나 배씨는 “범행에 가담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배씨가 1차 조사에서는 혐의를 일부 시인했으나 이후 말을 바꿨다. 구속영장 신청 사유에 그 부분도 고려했다”고 전했다.

◇2006년에는 징계 내용 공개…이번에는 침묵 = 고려대 측은 ‘전대미문의 사태’라며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정확한 사실 관계 확인이 필요하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여 왔다.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긴 하나 “교육기관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는 입장 아래 교수들이 내부적으로 여러 차례 회의를 열고 이 문제를 논의했다.

경찰 수사와 별개로 자체 진상 조사를 진행한 양성평등센터는 조사 결과를 의대 측에 통보했고 의대는 학생상벌위원회를 꾸려 징계 수위를 심의했다.

부학장과 해당 학과장 등 교수들로 이뤄진 상벌위는 의대 개강일인 지난달 16일 자체적으로 징계 수위를 결정했으나 외부에 공개하지는 않았다.

가해자 측 최후 소명을 듣는 절차가 남았고 총장의 최종 승인이 나면 학교 본부 차원에서 공개 여부를 판단한다는 이유였다.

상벌위는 학부 전체 개강일인 지난달 29일을 전후해 징계를 마무리할 것으로 내다봤었다. 그러나 이후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이번 사건의 대외 공식 창구인 홍보실들 사이에는 말이 엇갈린다.

의료원 홍보실 관계자는 최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상벌위에서 심의를 끝내고 사안을 총장에게 넘겼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징계 내용을 밝히지 않으면서 “(상벌위 차원이 아니라) 학교 차원에서 비공개가 원칙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반면 본부 홍보실 관계자는 “아직 본부로 사안이 넘어오지 않았고 (징계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금은 결과 공개 여부를 비롯해 아무것도 확인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고려대 학생상벌세칙에는 ‘징계는 비공개로 심의함을 원칙으로 한다’는 규정이 있으나 심의 결과를 외부에 공개할 수 있는지에 관한 항목은 없다.

학교 측은 지난 2006년 본관 점거 시위로 사상 첫 출교를 당한 학생들에 대해 총장 이하 교무위원 이름으로 담화문을 내 징계 결과와 배경을 공개한 바 있다.

◇ “가해자 출교해야” 여론 비등 = 사건이 알려지면서 고려대 안팎에서는 가해자에게 최고 수위 징계인 출교 처분을 내려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가해 학생들이 의료인으로서 윤리를 저버린 행동을 한 이상 재입학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출교 처분을 통해 의사가 될 길을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출교보다 약한 징계를 받은 가해자들이 학교에 복귀하면 피해자와 언제든 다시 마주칠 수 있어 2차 피해가 우려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상벌위 측이 징계 내용을 밝히지 않으면서도 “교육기관으로서 해당 학생들의 교화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으면서 ‘학교가 피해자를 배려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고려대 졸업생과 재학생 127명은 지난달 가해 학생의 출교를 요구하는 대자보를 실명과 함께 붙였다. 일부 단과대 학생회 등 학내 단체들도 대자보를 붙이고 기자회견을 연 데 이어 출교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가해자 가운데 한 명이 구속되기 전 의대생들을 대상으로 피해자의 사생활이 문란했는지 등을 묻는 설문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이 더욱 높아졌다. 피해자 측은 명예훼손으로 법적 대응을 할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학생의 언니는 지난달 시민단체를 통해 “눈만 뜨면 학교에 가서 공부하던 동생이 학교에 가는 것도, 사람을 만나는 것도 무섭다고 한다”며 “동생이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족의 유일한 바람”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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