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보다 더딘 ‘여성의 봄’

‘아랍의 봄’보다 더딘 ‘여성의 봄’

입력 2011-06-02 00:00
업데이트 2011-06-02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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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군, 시위여성 처녀성 검사·성폭행 자행

‘아랍의 봄’으로 상징되는 중동 민주화는 엄청난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여성의 권리가 미약한 중동 지역에서 ‘여성의 봄’이 찾아오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외신들은 전한다. ‘아랍의 봄’에서 드러난 여성의 피해 사례는 부지기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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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이집트에서 시위 도중 체포된 여성에 대해 처녀성을 검사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미국 CNN 방송은 31일(현지시간) 이집트 장성급 군인의 말을 인용, “군부에 의해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성 시위대의 주장을 묵살하기 위해 애초부터 처녀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처녀성 검사’를 했다.”고 밝혔다. 그는 “군에 구금됐던 이들은 타흐리르 광장의 텐트에서 남성 시위대에 뒤섞여 있던 여성들”이라며 여성 시위대의 정조 관념을 문제 삼기도 했다.

리비아에서는 정부군이 조직적으로 반(反)정부군 장악 지역에서 성폭행을 일삼고 있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방송은 “상관이 작전 개시 전에 비아그라와 같은 성 기능 개선제까지 지급하면서 군인들에게 성폭행을 지시했다.”면서 “감옥에 수감된 다른 정부군 투항 병사들도 끔찍한 성폭행이 일상적으로 자행되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조 관념이 절대적인 중동 사회에서 이들이 피해 사실을 밝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외신들은 전한다.

심지어 성폭행을 당했어도 가족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살해를 당하는 ‘명예살인’이 한해 5000건 가까이 발생하는 지역이 이곳이다. 정부군은 이런 상황을 교묘히 악용해 처녀성 검사나 성폭행을 여성 시위대를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

이 때문에 ‘아랍의 봄’이 찾아와도 아랍 여성들의 고통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아랍의 봄’의 발화점이었던 튀니지에서는 지난 1월 독재자 벤 알리가 축출된 직후 남녀 평등을 주장하는 여성들의 가두 행진에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여자들은 부엌을 지키는 존재”라는 비아냥이었다. 혁명이 성공한 이집트도 대통령 출마 자격을 남성으로 제한한 헌법은 고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여성의 복장에 비교적 관대했던 이집트 일부 지역에서는 (혁명 이후) 급진적 이슬람 세력의 힘이 강해지면서 다시 온몸에 히잡을 두르고 있다.”고 밝혔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중동 반정부 시위도 결국 남성들끼리의 권력 교체일 뿐, 명예살인이나 할례와 같은 여성 인권 문제와는 무관하다.”면서 “이번 시위로 인해 여성 인권이 즉각적으로 향상되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2011-06-02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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