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요구 묵살 정신질환자 자살, 병원도 책임”

“퇴원요구 묵살 정신질환자 자살, 병원도 책임”

입력 2011-04-04 00:00
업데이트 2011-04-04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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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구조공단, 유족 소송대리 승소 끌어내

퇴원 및 가족면회 요구를 묵살당하고 방치됐다가 두려움 속에 자살한 한 정신질환자 유족이 법률구조 지원을 받아 장기간 법정싸움을 벌인 끝에 병원 측의 배상책임을 이끌어냈다.

4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2007년 5월 정신분열 증세로 서울의 한 정신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던 J씨는 병실 쇠창살을 뚫고 건물 아래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병원 측이 진솔한 사과 한마디 없이 ‘환자의 보호ㆍ관찰에 최선을 다했다’는 주장과 함께 사고 책임을 떠넘기자, 분개한 유족은 2009년 11월 “병원 측 관리 소홀로 사고가 났다”며 서울북부지법에 2억1천800여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유족은 10개월간 ‘나홀로’ 소송을 벌였으나 법률 지식이 부족해 어려움에 처하자 작년 9월 법률구조공단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사고 경위를 전해 들은 공단 측은 단순 자살이 아니라고 판단해 소송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소송 과정은 유족에게 결코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진 않았다.

사건 자체가 환자 자살에 의한 것인데다 병원 측이 소송에 대비해 미리 의료분야에 정통한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철저한 준비를 해온 터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건을 수사한 경찰과 검찰도 병원 운영자에게 무혐의 처분을 해 병원 측 과실을 입증하는 일은 더 어려워 보였다.

그러나 공단 측은 J씨의 의료기록 등을 토대로 병원 측이 환자 관리를 충실히 하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단서를 하나하나 찾아나갔다.

공단 측 소송대리인은 의료기록을 검토해 J씨의 거듭된 퇴원 및 가족면회 요청을 병원 측이 묵살했다는 점과 이후 J씨의 불안감이 증폭된 점, 자살 전 30분 이상 방치된 사실 등을 차례로 밝혀냈다.

아울러 환자의 투신자살을 막고자 각 병실에 쇠창살과 CCTV를 설치하는 등 최선을 다했다는 병원 측 주장에는 J씨가 구부릴 수 있을 정도로 쇠창살이 허술했고 CCTV도 사각지대가 많아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없다는 논리로 맞섰다.

또 자살하기 전 30분간 J씨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은 CCTV 검증을 통해 그가 간호사의 도움 없이 홀로 방치된 채 두려움에 떨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재판부는 1년3개월에 걸친 심리 끝에 병원 측의 과실을 인정해 유족에게 2억1천6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표면상으로는 일부 승소였지만 유족 측이 제기한 손해배상액 대부분이 인정돼 사실상 완전 승소와 다름없었다.

공단 관계자는 “자칫 한 정신질환자의 우발적인 자살사건으로 묻힐 뻔했으나 적극적인 소송 수행으로 병원의 과실 책임을 이끌어내 유족의 한을 일부나마 풀어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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