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공포 확산… 주민 총대피령

2차공포 확산… 주민 총대피령

입력 2010-11-26 00:00
업데이트 2010-11-26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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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섬 된 연평도’ 본지 기자 현지 르포

25일 오후 2시 40분 연평도 당섬 선착장. 오장육부(五臟六腑)가 뒤집힐 정도로 지독한 배멀미 끝에 연평도에 도착했다. 텅 빈 해안가는 숨이 멎을 만큼 조용했다. 바닷바람은 칼로 살을 에는 듯 차가웠다. 경찰 SUV 차량으로 연평파출소까지 가는 데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2차선 도로 양옆으로 펼쳐진 개펄을 지나 마을 초입에 들어섰지만 눈을 씻고 봐도 사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열에 여덟아홉으로 단층 슬레이트집 유리창은 박살 나 흉가 몰골을 하고 있고, 주인 잃은 자전거만 여기저기 널브러져 뒹군다. 북한군의 집중 포격을 맞은 2010년 11월의 연평도. 60년 전인 6·25전쟁 때와 너무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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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연평도 당섬 선착장에서 한 할머니가 해경 특공대원(SSAT)의 등에 업혀 육지로 나가는 배를 타러 가고 있다.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25일 오후 연평도 당섬 선착장에서 한 할머니가 해경 특공대원(SSAT)의 등에 업혀 육지로 나가는 배를 타러 가고 있다.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형광색 옷을 입은 건설·통신 복구 작업 인부들이 차에 올라타는 모습이 보여 섬을 둘러보기로 했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거의 모든 집 유리창이 안팎으로 산산조각 났고, 창틀도 녹아내렸다. 포탄이 떨어진 주변은 지붕이 폭삭 주저앉는 등 잿더미로 변해 있다. 집 안에도, 밖에도 위험한 곳 천지이고 고치려는 사람은 없다.

오후 3시 30분. 파출소 뒤 우체국의 직원들이 깨진 창을 라면박스로 막고 있다. “창만 막았는데도 훨씬 낫다.”면서 “전기나 난방이 안 돼 석유버너로 라면을 끓여 먹거나 적십자사에서 주는 배식품으로 밥을 해 먹는다.”고 말했다.

파출소에서 150m쯤 떨어진 연평면사무소의 직원은 “조금 있으면 잔류 주민 230명도 다 섬을 나갈 것”이라고 했다. “상황이 끝난 것이 아니어서 대피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의 서해훈련이 끝나는 다음 달 1일까지 인천으로 내보낸다. 워싱턴호의 서해 한·미연합훈련에 북한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기 때문이란다. 주민이 완전 소개(疏開)되면 남는 사람은 군인을 제외하고 경찰, 소방서, 보건소 직원 등 100여명. 잠은 책상에 앉아서 자거나 연평초·중·고에서 새우잠을 청한다. 텐트가 설치됐지만 날이 너무 추워서 밤에는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남아 있는 주민들도 25일 두 차례에 걸쳐 대부분 인천으로 빠져나갔다. 동부리 이장 염형권(63)씨도 “인천에 연고가 없기는 하지만, 여기 있기는 불안해서 나간다.”며 서둘러 짐을 쌌다. 지금 연평도에는 ‘2차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향삼주(63·여)씨는 “망가진 세간살이며 집을 보니 끔찍하다. 다시 연평도에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윤종균(58)씨는 “오늘 다시 연평도에 들어간다고 하자 아내가 집이랑 세간 다 버려도 좋으니 가지 말라고 했다.”고 했다. 25일 연평면에 따르면 전체 주민의 80%인 1120여명이 인천 등지로 피난한 것으로 집계(오후 5시 기준)됐다. 오후 8시, 해가 저물자 연평도에는 을씨년스러운 적막감만 돌았다.

연평도 백민경·김양진기자

white@seoul.co.kr
2010-11-26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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