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원 친구의 꼬드김·가난의 굴레… 평범한 삶은 사치였다

소년원 친구의 꼬드김·가난의 굴레… 평범한 삶은 사치였다

김정화, 이근아, 진선민 기자
입력 2020-11-18 20:56
업데이트 2020-11-19 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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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범-죄의 기록] ④ 재범보다 힘든 홀로서기-자립의 삶

채소 가게를 운영하는 배한결(34·이하 가명)씨의 하루는 새벽 4시에 시작한다. 사위가 어둑할 때 집을 나와 그날의 주문 물량을 확인하고, 도매 시장에서 떼 온 채소를 팔고 배달까지 직접 다니면 다시 캄캄한 밤이다. 하루 수면 시간은 고작 서너 시간. 힘들지만 멈출 수 없는 삶이다.

지금의 일상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기 때문이다. 배씨는 10대 후반 온라인 중고거래 사기로 처벌받은 소년범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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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범의 홀로서기는 쉽지 않다. 소년원에서 나와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은 친구 관계를 끊지 못하고 다시 비행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보호처분시설에서 생활하다 자립해 배달 대행 일을 하는 김성태(가명)씨. 김명국 선임기자 daunso@seoul.co.kr
소년범의 홀로서기는 쉽지 않다. 소년원에서 나와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은 친구 관계를 끊지 못하고 다시 비행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보호처분시설에서 생활하다 자립해 배달 대행 일을 하는 김성태(가명)씨.
김명국 선임기자 daunso@seoul.co.kr
이후 어울리던 친구들과 관계를 끊으려 고향을 떠났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다 탈퇴했다. 과거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휘둘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배씨는 “방황하던 10대 시절을 돌아보면 후회된다. 열심히 따라가도 남들보다 열 발자국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사람들은 소년범을 강력히 처벌하자고 하지만 정작 이들이 벌을 받고서 어떤 삶을 사는지는 관심이 없다. 배씨처럼 새 삶을 꾸려나가는 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가정이나 친구 관계 등 환경이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소년들이 재범의 유혹을 이겨 내기란 쉽지 않다. 서울신문은 소년원 출원생 7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해 소년원 입소 전과 후 친구 관계나 출원 후 필요한 사회적 지원 등에 대해 물었다. 개별 인터뷰로 보호처분 이후 자립 과정이 어땠는지도 살펴봤다. 설문조사와 인터뷰는 법무부 산하 한국소년보호협회와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서울서부지소 등의 도움을 받았다.

●관계 끊기 어려운 비행 친구들의 유혹

소년들은 출원 직후 경제적 어려움(27.4%)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26.5%), 비행 친구들의 유혹(17.7%)을 견디기 어렵다고 했다(복수응답). 현실적으로 재범을 부추기는 가장 큰 요인은 기존 친구들과의 관계다. 소년원에서 2년간 생활하다 나온 영민(18)은 돌아갈 집이 없어 복지시설에서 생활하다 다섯 달 만에 또 가게를 털었다. “돈 벌자”는 친한 형의 꼬드김을 거절하지 못했다. 그는 “소년원에서 반성하기보다는 ‘사회 나가면 몸 좀 풀어볼까’라고 얘기하는 아이들이 많다”면서 “살던 동네로 돌아가면 또 사고를 칠 것 같아 지금은 다른 지역 쉼터에서 지낸다”고 했다.

소년원에 갔다 와도 망가져 있던 가정환경과 학교생활이 회복되지 않으니 변화가 더디다. 보호처분 시설에 있다가 자립해 배달 대행 일을 하는 김성태(28)씨는 “보호처분 이후 사회에 나갔을 때 옆에서 잡아주는 사람이 없어 성인범이 되는 경우도 많다”면서 “아는 형 하나는 계속 정신을 못 차리더니 결국 감옥에 갔다”고 말했다.

사회는 ‘의지와 노력으로 스스로 일어나야 하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그러나 가정과 사회에서 지켜야 할 규칙과 도덕, 생활 습관이 몸에 익지 않은 소년들에겐 말처럼 쉬운 얘기가 아니다. 6호 보호처분을 받은 뒤 또다시 폭행에 휘말려 소년원까지 갔다 온 전성현(21)씨는 출원 뒤 폭력을 일삼던 부모에게 돌아가기 싫어 위탁 시설에서 지낸다. 전씨는 “10대 때는 집에서 누구도 챙겨 주지 않아 대충 살았고, 학교에도 지각을 밥 먹듯 했다”며 “시설에서야 비로소 규칙적인 생활 습관이라는 것을 익히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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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어릴수록·가정학대 심할수록 재범 높아

가난이란 굴레도 이들을 옭아맨다. 자의 반 타의 반 학업이 중단되는 경우가 많아 취업 역시 쉽지 않다. 하경석(27)씨는 보호처분 시설 관계자들의 도움으로 고등학교는 겨우 졸업했지만, 악화된 집안 사정에 일용직을 전전했다. 지금 상황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는 “현재 IT(정보기술) 회사에서 일하는데 고졸이라 월급이 200만원도 안 된다”며 “대학에 가고 싶지만 배움이 짧고 돈도 없어 꿈도 못 꾼다”고 했다. 소년원 출원생 대상 설문조사에서도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많았다. 취업 지원(39.8%)이나 주거 지원(22.2%), 교육 지원(15.7%)처럼 사회에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는 취지다(복수응답).

보호처분 이후 소년범의 사회 정착을 돕는 것이 곧 재범을 막는 일이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과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6년부터 3년간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소년범의 평균 80~90%가 1년도 되지 않아 또다시 범죄를 저질렀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소년원생의 안정적 사회정착을 위한 실태조사 및 정책 지원 방안 연구’에 따르면 사회정착에 실패한 소년은 전체 조사대상 399명의 약 40%(152명)에 달했다. 재범을 저지르는 비율은 남자일수록, 나이가 어릴수록, 가정의 학대가 심할수록 높았다.

소년들은 그저 평범한 삶을 꿈꾼다. 그러나 평범하게 되려면 많은 노력과 도움이 필요하다. 상점을 털었다가 6호 보호처분(복지시설 보호)을 받았던 준영(19)은 보호관찰 기간에 머문 쉼터의 도움으로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내 힘으로 일해 돈을 번다’는 기쁨을 느꼈다. ‘평범한 직장인’이라는 소박하지만 절실한 꿈도 생겼다. “(피해를 준) 가게 주인아저씨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는 그는 “‘넌 잘해 낼 거다’라는 쉼터 선생님들의 믿음을 저버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박성훈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년들의 재범을 막으려면 처벌 외에도 주거나 학업, 취업, 의료 등 종합적인 보호가 필요하지만 거의 없는 실정”이라면서 “소년범마다 정신질환 치료나 가족관계 회복, 경제적 지원 등 필요한 부분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종합 서비스와 함께 개개인 맞춤형 서비스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서울신문의 ‘소년범-죄의 기록’ 기획기사는 소년범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인터랙티브형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거나 URL에 복사해 붙여 넣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youngOffender/

※ 본 기획기사와 인터랙티브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2020-11-19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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