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톡톡 다시 읽기] (35)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고전 톡톡 다시 읽기] (35)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입력 2010-09-27 00:00
업데이트 2010-09-27 00:0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운명, 피할 수 없거든 껴안아라

기원전 5세기쯤에 창작된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왕’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신의 예언(신탁)을 받고 태어난 테베의 왕자 오이디푸스. 그는 예언이 글자 그대로 실현된 후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된 채로 테베를 떠나 버리고 만다. 이 비극은 서양문학과 연극의 고전 중의 고전일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동서양의 수많은 문학 작품의 마르지 않는 샘이 되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정신분석학 용어나 고전문예학 교과서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의 출발점도 여기서부터다.

이미지 확대
프랑스 상징주의 화가 귀스타브 모로가 1864년 그린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프랑스 상징주의 화가 귀스타브 모로가 1864년 그린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신은 자연이자 우주 존재의 법칙

오이디푸스에게 내려진 신탁은 실은 아버지 라이오스의 죄에서(소포클레스의 작품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비롯된 것이다. 일찍이 라이오스는 미소년 크리소포스를 유괴, 강간한다. 분노한 크리소포스의 아버지는 “결코 아들을 두지 못할진저. 만약 아들을 두면 그 아들에 의해 죽음을 당하리.”라고 저주를 퍼붓고, 이것이 신에게 가닿아 신탁으로 내려졌다. 신이 말씀하셨으니 이는 운명이다. 이 운명 앞에 선 인간들은 안간힘을 다해 도망치려 한다.

아버지 라이오스. 그는 갓 태어난 아들의 발을 꽁꽁 묶어서 깊은 산속에 내다 버린다. 신탁대로 아들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운명으로부터 도망가려 했던 것은 아들 오이디푸스도 마찬가지였다. 운 좋게 목숨을 건져 양부모 밑에서 청년으로 자라난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신탁을 알게 되자, 멀리 길을 떠난다. 양부모를 친부모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곁을 떠나면 자신의 운명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라이오스와 오이디푸스가 기를 쓰고 도망가려 했지만, 결국 신탁대로 모든 일이 벌어졌다. 신은 신탁을 내렸고, 인간은 그것을 피할 수 없었다.

왜 이다지 인간은 무력한가. 신이 무엇이기에, 전지전능한 그의 능력 때문에 인간은 그저 복종만 할 수밖에 없는가. 그래서 ‘오이디푸스왕’이 비극인가.

이렇게 생각한다면, 소포클레스의 비극은 한갓 삼류드라마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가련한 인간을 위해 눈물이나 한번 흘리고 말면 잊혀질 이야기, 그뿐이다.

오이디푸스의 운명과 신의 존재는 그러나 훨씬 더 근본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신은 내 삶을 결정하는 존재다. 생성과 소멸을 관장하고, 삼라만상의 변화를 지휘하는 존재가 신이다. 이런 존재는 바로 자연의 섭리 그 자체다. 인간이 죽고 사는 것, 나아가 세상만물의 생로병사가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은 자연이자 우주적인 존재법칙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어떻게 자연에 맞설 수 있겠는가. 그에 맞서는 것은 내 삶을 포기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인간으로 살고 있는 한, 삶의 자연법칙을 벗어날 수는 없다. 더구나 ‘오이디푸스왕’에서 나오는 운명은 라이오스의 죄로 인해 내려진 인과응보다. 원인이 있으면 그에 따른 결과가 있다. 죄에는 벌이 따른다. 그것이 자연법칙이자 운명이다. 그래서 이 운명은 피할 수 없다.

●운명 앞에 선 인간, 어떻게 할 것인가

신이 자연이고, 내 운명이 자연의 법칙에 닿아 있는 이상, 인간은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그것을 겪고 나서야 인간은 비로소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 그것을 감당하지 않고서는 그저 죽는 길만이 선택가능하다. 그래서 오이디푸스의 비극적 사건, 즉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사실이 밝혀졌을 때, 충격을 받은 어머니이자 아내인 왕비 이오카스테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다. 이 끔찍한 일들은 이미 일어난 과거의 사건들이고,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자, 오이디푸스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아버지의 죄 때문에 일어난 인과응보의 족쇄, 벗어날 수 없는 운명과 과거. 그 앞에서 왕비는 죽음을 선택하지만,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눈을 찌르고 장님이 된 채로 테베를 떠난다.

그가 운명을 감당한 방식은 장님되기, 국경넘기, 길찾기였다. 장님이 되어버리는 것은 바로 자신의 눈으로 보아온, 혹은 인정한 모든 것들을 내려놓는 일이다. 자신이 타고난 것을 과감하게 버리는 일이자, 익숙한 모든 것으로부터 결별하겠다는 결단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길을 떠난다.

테베를 떠나 이웃 콜로노스로 간 오이디푸스는 환영받지 못하는 이방인이다. 막강한 권력이었던 왕의 자리를 내려와, 자신의 영역이었던 국가 경계를 넘어가는 일은 자신이 소유했던 그 모든 것을 벗어나는 것이다. 장님이 됨으로써 자기 세계와 결별하고, 국경이라는 경계, 즉 자신에게 익숙했던 배치를 넘어서서 고행의 길을 떠남으로써 새로운 장으로 접어드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오이디푸스의 선택들은 아마도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고통을 선택했다는 것은 결국 벗어날 수 없는 과거를 껴안으면서 자신을 정화시키는 길에 다름아니다. 바로 이것이 운명이 채워준 족쇄에서 자유로워지는 오이디푸스의 선택이다.

이 순간 비로소 오이디푸스는 진정한 영웅으로 탄생한다. 스핑크스를 무찌르고 테베의 왕이 되었을 때가 아니라, 장님이 되어서 고행의 길을 떠나는 순간 진정한 영웅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오이디푸스의 선택은 운명에 체념하는 수동성이 아니라 과거를 긍정하고, 운명을 사랑하는 그로 인하여 새로운 장으로 나아가는 능동적인 행위이다.

과거를, 자신의 운명을 긍정하고 나아가 사랑한다는 것은 지금의 삶에 무조건 만족한다는 뜻이 아니다. 삶을 체념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인생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감당하기에 버거운 사건들과 마주쳤을 때, 어떤 것과 만나더라도 뒤로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것. 그것이 내 운명을 맞이하는, 그리고 그 운명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김연숙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서울신문·수유+너머 공동기획
2010-09-27 22면
많이 본 뉴스
종부세 완화, 당신의 생각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종합부동산세 완화와 관련한 논쟁이 뜨겁습니다. 1가구 1주택·실거주자에 대한 종부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종부세 완화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완화해야 한다
완화할 필요가 없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