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6각형 치유로 아이를 구하라
교육청 2년간 현장실험 성과ADHD 학생 지도 위한 안내서
“아이 행복하면 갈등 없을까?”
임상전문가, 부모 육아법 교육
교사는 교실 내 지도방법 공유
정신과전문의 가족·교사 상담
검토위 27명이 직접 실행·보완
학교는 지루한 일상과 작은 이벤트가 교차하는 장소이다. 정서·행동 문제를 지닌 학생이라면 그 편차가 더 크게 다가온다. 이들에게 학교는 불편한 곳이지만 스스로의 문제를 극복할 힘을 낼 기회의 공간이기도 하다. 지금도 학교에선 ‘좋은 어른들’을 매개로 정서·행동 문제를 극복해 내는 작은 기적들이 일어난다. 부모, 교사, 임상심리전문가, 정신과 전문의, 친구 그리고 스스로의 힘을 통해 아이들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문제는 제도화. 전문가 각자의 힘으로 정서 위기를 해결할 뿐 이들이 힘을 합쳐 아이를 빠르게 지원하는 ‘육각형 치유법’(그림 참조)은 구현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 2년간 학교 안팎 전문가들이 교육청을 중심으로 모여서 이뤄 낸 성과를 전한다.
지난 겨울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이세경(맨 오른쪽) 교사가 ADHD 담임교사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한지은 기자
한지은 기자
“너무 힘들어 안방에서 문 닫고 엉엉 우니까 둘째가 들어와서 제가 예전에 했듯이 등을 쓰다듬으며 ‘엄마, 호흡해. 호흡해. 엄마가 나 지켜 줬으니까 이제 내가 지켜 줄게’라고 하는데 ‘다행이다. 이 아이는 결국 따뜻한 아이로 잘 자라겠구나’ 안도했습니다.”
지난해 가을 저녁 서울시교육청에서 마련된 학부모 교육 현장에서는 정서·행동 문제를 지닌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말이 끝날 때마다 눈물이 터졌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아이를 키우느라 학교와 사회에서 언제나 죄인이었던 부모들은 쉽게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최근 이렇게 울어 본 적이 없다’고 쓴 소감문을 보며 교육을 이끌던 도례미 서울대병원 임상심리 연구교수는 남은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지 걱정이 들었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동부교육지원청에서 오미애 경희의료원 교수가 학부모를 대상으로 ADHD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한지은 기자
비슷한 시기 서울 동부교육지원청에는 ADHD 아동을 교육하는 교사들이 모였다. 교실에서 ADHD 아이 자리를 맨 앞에 둘지, 의자 뒤의 여유 공간이 넓은 뒷자리가 좋을지 교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했다. 에어컨에서 가까운 자리에 앉으면 소음 때문인지 아이 집중력이 더 흐트러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교실로 돌아가서는 에어컨에서 떨어진 쪽으로 아이 자리를 바꿔 앉혔다.
임상심리 전문가와 교사, 부모들이 만난 경험은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이 발간한 ‘ADHD 학생 지도를 위한 교사용 안내서’에 녹아들었다. 외국 책을 번역하거나 이론을 정리한 매뉴얼이 아니라 임상심리 전문가가 ADHD 아동의 학교생활을 개선할 방법을 제안하면 27명의 검토위원 교사가 직접 교실에서 실행해 본 뒤 보완하는 일을 여러 차례 반복한 끝에 한국형 교실에 맞는 ADHD 지도 매뉴얼이 나왔다.
박중재 서울 동부교육지원청 학교통합지원센터장
교육부에서도 낸 적 없던 ADHD 교육 매뉴얼을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우선 정신과 전문의를 초빙해 ADHD에 대한 학부모·교사 대상 강의를 열며 ADHD 가족과 지도교사들이 겪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탐색했다. 이후 110여명의 교사들로 구성된 위기학생 지원 전문학습공동체를 꾸려 ADHD 아동 및 교사에게 필요한 지식과 지원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학교 밖 보건 전문가들과 함께 ADHD 교사 매뉴얼을 만든 데 이어 지난겨울에는 학교로 찾아가는 ADHD 전문 컨설팅을 실시했다. ADHD 의심 아동과 부모, 교사 상담을 통해 문제의 해법을 찾는 컨설팅이다.
많은 교사들이 이미 ADHD 아이 교육법을 경험적으로 익히고 있었다. 올해로 32년차 초등교사인 이세경씨는 그중에서도 발군으로 인정받았다. 2000년대 초반쯤 유독 집중을 못 하는 ADHD 아이를 처음 접했던 이씨는 미술 시간 안절부절못하던 아이에게 “동그라미 3개부터 그려 볼까”라고 과제를 쪼개서 내준 일을 시작으로 ADHD 대응 교육법을 익혔다. 아이가 뛰쳐 나가려는 조짐이 보이면 “모두 책상에 엎드려 동굴 탐험을 하자”며 진정시켰다. 이씨와 같은 교육 베테랑 교사들도 자신의 방법이 임상적으로 옳은 방법인지 의구심이 있었는데, 정신과 전문의나 상담 교사와 의견을 나누며 확신을 얻었다.
국내에서 정신과를 다니며 질병코드 F를 부여받는 학생이 늘고 있지만 정서·행동 문제 해결은 여전히 교육 정책의 후순위다. 세수 부족을 이유로 지난 2년 동안 진행돼 온 ADHD 대응 관련 시교육청의 많은 사업 또한 중단됐다. 그래도 현장 전문가들은 학교, 병원, 가정에서 노력을 이어 갈 생각이다. 2년 전에 비하면 많은 지식이 축적됐고 매뉴얼을 펴 볼 수 있게 된 데다 예산이 끊겼다고 정서 위기 아동을 향한 지원을 멈추기엔 학교 현장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판단 때문에 지금 당장 아이를 구할 노력을 다하기로 했다.
ADHD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네이버 블로그 <세상 산만한 사람들>에서 볼 수 있습니다.
2024-03-07 1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