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세 마도로스’ 해외봉사로 제2의 인생

‘71세 마도로스’ 해외봉사로 제2의 인생

입력 2013-04-06 00:00
업데이트 2013-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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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ICA 최고령 단원 권오학씨

“건강 걱정은 마세요. 하루라도 빨리 현장서 우리나라의 선진 영농기술을 전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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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ICA 최고령 단원 권오학씨
KOICA 최고령 단원 권오학씨
평생을 바닷바람과 싸워온 칠순 넘은 마도로스가 해외 봉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권오학(71)씨가 주인공이다. 그는 23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 역사상 최고령 해외봉사 단원이다. KOICA가 지난해 12월 62세였던 나이제한을 폐지하면서 기회를 얻었다. “얼마를 더 살지는 모르지만 남은 인생을 이웃과 사회에 봉사하는 일에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틈틈이 해외 봉사의 기회를 노렸는데 운 좋게 저 같은 노인을 받아 줬네요.” 권씨는 다음 달 말 우즈베키스탄으로 출국해 2년 동안 과일, 채소 재배 기술을 현지 농민들에게 전수하고 함께 농사도 짓는다.

어려운 집안을 일으켜 보겠다는 생각에 1961년 19살 소년은 해군에 입대했다. 청년이 된 소년은 66년엔 월남전에 참전해 사지를 넘나들었다. 본격적인 항해는 74년 일본 해운회사에 삼등 항해사로 취직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등 항해사, 일등 항해사를 거쳐 87년 선장이 됐다. 원하던 선장이 됐지만 뱃일을 하며 목숨을 잃을 뻔한 아찔한 순간도 여러 번 있었다. “인도네시아 해적에게 납치됐을 땐 죽는 줄 알았죠. 칼로 위협하며 돈을 요구했는데 숨겨둔 비상금을 건네고 겨우 목숨만 건졌어요.”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였다. “만 40년을 배를 탔으니 별별 나라를 다 자녔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도미니카공화국에서 만난 농촌 아이들의 모습이에요. 언젠간 저런 아이들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환갑이 넘은 2004년. 권씨는 인생의 절반을 바다에서 보내고서야 마침내 뭍으로 올라왔다. 남들이 은퇴할 나이에 권씨는 공부를 시작했다.

서울 종로구 동숭동의 평생교육기관인 진형고에 입학한 그는 손자뻘 되는 젊은이들과 경쟁해 졸업장을 취득했고, 2010년 한경대 원예과에 입학했다. 대학에서는 원예작물 재배에 관한 이론을 배우고 경기도 농촌기술원 특작과에서 실습하며 기술을 닦았다. “이제 공부한 것으로 나눔을 실천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아내 혼자 두고 돌아다니는 것이 미안할 따름이죠. 이번에도 혼자 떠납니다. 2년 뒤를 기약해야겠죠.”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2013-04-06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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