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두가지 버전의 셰익스피어 ‘맥베스’

[공연리뷰]두가지 버전의 셰익스피어 ‘맥베스’

입력 2010-10-29 00:00
수정 2010-10-29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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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비극이 지금처럼 비극이란 이름을 달고 명작 대접을 받는 것은 낭만주의적 해석 덕분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철부지 어린 남녀가 근엄한 가문을 무시한 채 사랑이랍시고 날뛰면 어떤 결말에 이르는지 보여 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진실한 사랑 어쩌고저쩌고 하는 건 억울하단 소리밖에 안 된다. 한마디로 ‘자업자득’을 드러내는 교훈극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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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랬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
‘내가 그랬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
‘맥베스’도 마찬가지다. 운명과 죄의식 따위를 잔뜩 읊어대지만, 실패한 쿠데타의 변명에 불과할 수 있다. 권력의지란, 하나의 도시에 공수부대를 투입해 과감하게 ‘진압’해 버려도 죄의식 따윈 느끼지 않는 것이다. 29만원 가지고 살아도, 지역명사로 고향에 초대받아 박수를 받아도 하나도 거리낄 게 없도록 하는 것이 권력의지다. 맥베스가 7년 정도 왕좌를 차지했다면 지금쯤 거만한 표정으로 지난 세월을 회고하면서 “그 시대엔 어쩔 수 없었어.”라고 뻐기고 있을는지 모른다. 그런데 맥베스는 잡은 권력을 이내 빼앗겼다. 때문에 “사실 그러려고 그런게 아닌데 운명이 속삭였고, 마누라가 부추겼어.”라고 변명하는 것이리라. ‘맥베스’에 대한 발랄한 변주를 보여주는 두 작품이 공연되고 있다.

●‘내가 그랬다고’ 기묘한 음악도 매력적

누군가 그랬다. 요즘 같은 세상에 하다 못해 벽에다 대고 욕이라도 하라고. 오는 31일까지 서울 대학로 게릴라극장에 오르는 ‘내가 그랬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배요섭 연출, 공연창작집단 뛰다 제작)의 제목은 바로 그 대목을 지적한다. 권력자가 그랬다고 말하지 못하는 시대에 대한 우화다.

진한 어릿광대 분장으로 등장한 배우들은 맥베스가 던컨왕을 죽일 때까지의 과정과 맥베스가 왕좌를 차지한 뒤 미쳐 가는 과정을 몸동작으로, 가끔 단말마적인 비명만을 섞어 압축적으로 제시한다. 대신 권좌에 있는 맥베스가 권력을 어떻게 쓰는지, 권력의 작동방식에 초점을 맞춘다. 운명이나 부인 핑계를 대지만, 실은 자기 욕망에 들어맞는 말만 듣는 맥베스를 그린다. 기본적으로 광대놀이의 설정에다, 우리나라 독재정권의 추억들도 간간이 삽입되고, 무대 전환을 위한 암전 대목에도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많아 웃음을 준다. 기타와 키보드 2명의 연주자로 구성된 ‘욤 프로젝트’의 기기묘묘한 음악도 좋다. 이 음악을 타고 배우들은 가끔 떠돌이 유랑악극단과도 같은 면모를 선보이는데 아주 매혹적이다. 창단 10년을 맞아 올해 강원도 화천군 신읍리 폐교가 있던 곳에 ‘화천공연예술텃밭’을 마련, 이주한 극단이 내놓은 첫 창작품이다. 서울보다 더 어려운 여건에서 훌륭한 연기와 작품을 선보인 극단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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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 막베스’
‘칼로 막베스’
●‘칼로 막베스’ 서울공연예술제 참가작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참가작으로 29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 오르는 ‘칼로 막베스’(고선웅 연출, 극단 마방진 제작)는 발음나는 그대로다. 진짜 칼로 막 벤다. 무협액션극으로 변주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일단 시공간을 이동시켰다. 일본 영화 ‘배틀 로얄’의 설정과 비슷하게 범죄자들만 따로 수감해 둔 야생의 세계 ‘세렝게티 베이’가 무대다. 수감된 범죄자들은 자기네들끼리 편을 갈라 늘 칼부림을 해대는 야생의 생활을 이어간다. 배우들의 칼부림 액션신이 예상 이상으로 좋다. 편집이 없는 무대에서 합을 맞추기까지 들였을 노고와 땀이 빛난다. 곳곳에 숨어 있는 유쾌한 웃음 코드도 좋다.

아쉬운 점은 좋은 아이디어가 여러 곳에 포진했음에도 이를 더 발전적으로 밀어붙이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왕 발상을 달리한 작품이라면 제목처럼 원작을 시원스럽게 막 베어 버리면 좋겠는데, 그러질 못한다. 악질적 범죄자들의 소굴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더 우악스럽고 광포스러워도 될 법한데, 원작의 길고도 거창하고도 유려한 대사를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번쩍이는 아이디어는 가끔 수면 위로 나오려다 다시 잠복해 버리고, 극은 늘어진다. 권좌에 오른 뒤 악령에 눌려 괴로워하는 맥베스처럼, 공들여 새로운 시도를 해 놓고도 원작의 무게감에 눌려 괴로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0-10-29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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