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진부하지 않은…비극적인, 비극적이지 않은
관객의 눈물을 짜내기엔 시한부 인생만 한 소재가 없다. 사랑하는 가족 혹은 연인과 병으로 인해 이별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은 무참히 비극적이다. 내 주변 사람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관객들은 때가 되면 이런 영화를 찾아간다. 비슷한 내용을 보고 또 봐도 물리지 않는다.웨딩 드레스
사실 영화 ‘웨딩드레스’는 이런 진화와는 거리가 멀다. ‘가슴 뭉클한 이별 선물’이라는 캐치프레이즈처럼 두 주인공은 한없이 운다. 위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사는 고운(송윤아)과 딸 소라(김향기)의 애틋한 사랑, 엄마 죽지 말라고 매달리는 모습은 너무나 많이 봐 왔던 장면이다. 단지 주목할 부분이 있다면 ‘남겨진 자의 성장’ 정도?
결벽증으로 왕따였던 소라가 엄마의 죽음을 통해 결벽증을 극복하는 장면에서 결말이 마냥 비극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을 주지시킨다. 어쩌면 영화는 시한부 인생을 통한 한 인간의 성장통을 담아내려고 한 듯하다. 물론 영화의 99%는 손수건 없인 보지 못할 슬픈 상황을 만들어 내고는 있지만.
그래도 송윤아와 김향기의 연기는 영화의 백미다. 위암 말기 환자가 너무 아름다워(?) 사실감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고운과 소라의 감정 표현은 한순간 한순간이 무척 설득력 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김명국, 전미선, 김여진 등 조연들의 뒷받침도 탄탄하다. 109분의 러닝타임이 그다지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배우들의 농익은 연기력의 힘이 크다.
‘2012’, ‘아바타’, ‘전우치’ 등 블록버스터에 놀란 가슴을 잠시 잠재우고 싶다면 웨딩드레스는 나름의 좋은 선택이다. 식상해하지 말고, 그냥 부담없이 편안히 앉아 보는 걸로 족하다. 14일 개봉.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2010-01-01 1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