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8월호]아내 구보타 시게코 씨가 말하는 ‘나의 사랑, 백남준’

[퀸8월호]아내 구보타 시게코 씨가 말하는 ‘나의 사랑, 백남준’

입력 2010-08-03 00:00
업데이트 2010-08-03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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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티스트 백남준의 연인으로, 아내로, 예술적 동반자로 40여 년을 함께한 구보타 시게코 씨가 ‘나의 사랑, 백남준’을 펴내고 한국을 찾았다.

 세계인이 사랑한 예술가 백남준. 하지만 정작 인간 백남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라는 명성 뒤에 가려진 백남준의 가난과 외로움 그리고 좌절…. 평생 그의 예술적 동지였던 아내 구보타 시게코 씨는 남편의 삶을 담담히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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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완전히 빈털터리였어요. 입는 것도 형편없었고 먹고살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 가난한 예술가였죠. 사람들이 슈퍼에서 먹는 것은 쉽게 사지만, 정신적인 분야인 예술품을 팔기는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었죠.”

 남루한 행색의 가난한 예술가였지만, 그때부터도 백남준의 천재성은 번뜩였다고 한다. 시게코 씨는 첫 만남에서 그에게 마음을 사로잡혔다.

 “도쿄에서 열린 공연에서 그의 에너지를 보고 매료되었어요. 한눈에 정말 천재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저 역시 예술가라서 사람을 보는 안목은 있는데, 백남준의 가치를 알아본 거죠. 그는 비디오 아티스트로서 고급과 저급을 모두 망라할 수 있는 폭넓은 사람이었어요. 얼마 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비디오 메시지를 국민에게 보냈어요. 이것이야말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이용한 것이죠. 비디오 아트에 있어 백남준은 조지 워싱턴과 같은 존재예요.”

 10년간 연인으로 지내면서도 결혼만은 한사코 거부하던 백남준이 돌연 구보타 시게코 씨에게 청혼하게 된 데는 남모르는 사연이 숨겨져 있다. 평소 백남준은 “난 아이 가질 생각이 없어. 예술하고 작품 만드는 데만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라고. 그리고 나 닮은 아이가 태어나면 골치만 아프지”라고 말할 정도로 아이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하지만 시게코 씨는 어느 정도 삶의 기반이 잡히자 그를 닮은 아기를 원하게 됐다. 병원을 찾은 시게코 씨는 뜻밖에 자궁암 진단을 받았다. 살기 위해 자궁 적출 수술을 받아야 할 형편이었다. 당시 보험이 없던 시게코 씨는 엄청난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일본으로 돌아가 병을 치료하려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때 백남준이 청혼을 했다. 부부의 연을 맺으면 백남준이 든 보험 혜택을 구보타가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10년을 연인으로 지내면서도 결혼만은 한사코 거부하던 ‘바람 같은 남자’가 시게코 씨의 병 치료를 위해 결혼을 결심한 것이다.

 비디오 아트는 많게는 수십, 수백 대의 TV 수상기가 필요했다. 한마디로 돈이 많이 드는 예술분야다. 백남준은 후원자를 찾기 힘들었던 무명 때는 물론이고 비디오 아티스트로서 명성을 쌓은 날까지도 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상황에 구애받지 않았다. 마치 예술을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좋을 만큼 오로지 창작에만 몰두했다. 작품 창작과 관련해서는 하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가난하고 궁핍했던 1972년, 그는 일본에 있는 형들을 방문해 1만 달러의 유산을 마지막으로 받아왔다. 하지만 그는 그 돈을 눈앞의 경제적 곤궁을 해결하는 데 사용하지 않았다. 맨해튼 시내 골동가게를 뒤져 불상을 사오는 데 써버렸기 때문이다. ‘사바세계의 고통으로 표정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불상은 2년 뒤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 중 걸작으로 꼽히는 ‘TV 부처’로 탄생했다.

 “뉴욕에 예술을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이 많아요. 그 친구들에게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예술은 월스트리트보다 더 많은 기회가 있는 분야예요. 열심히 하면 백남준처럼 훌륭한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해주고 싶었어요. 이 책이 젊은 예술가들에게 큰 희망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Queen 취재팀 김은희 기자 (kimeh@que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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