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 불일암에 머물던 시절의 덕조 스님. 류재민 기자
법정 스님의 추모법회와 함께 이날 길상사에는 주지 이취임식도 열렸다. 기존 주지였던 덕일 스님이 물러나고 덕조 스님이 직을 이어받았다. 길상사를 떠난 지 15년 만이었다.
법정 스님은 유언으로 “덕조는 맏상좌로서 다른 생각하지 말고 결제 중에는 제방선원에서, 해제 중에는 불일암에서 10년간 오로지 수행에만 매진한 후 사제들로부터 맏사형으로서 존중을 받으면서 사제들을 잘 이끌어주기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스승의 유지를 받든 제자는 전남 순천 송광사 근처의 불일암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지내다 보니 속세의 시간은 어느덧 15년이나 흘러 있었다.
길상사에서 만난 덕조 스님은 “다들 10년이 지나면 복귀한다고 생각하고 있더라”면서 “은사 스님께서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하셨고 10년에 연연하지 않고 살다 보니 15년이 됐다”고 웃었다.
카메라를 든 법정 스님. 덕조 스님 제공
불일암에 머물던 15년의 세월은 어떤 의미였을까. 덕조 스님은 “산속에 살았기 때문에 저 자신에 충실하고 그야말로 무상의 도를 수용할 수 있는 진짜 좋은 시간이었다”라며 “젊을 때 길상사에서 지낼 때는 앞만 보고 달려갔는데 지금은 둘레를 두루두루 살피며 갈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짧은 취임사에서도 “15년 전의 덕조가 아니다”라는 말로 행사에 참석한 이들에게 웃음을 안겼다.
덕조 스님은 “내 시간은 없다.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다 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길상사 주지로서 포교의 최전선에 왔다는 남다른 책임감에서 나온 발언이다. 길상사는 김영한씨가 기부했을 때부터 덕조 스님이 가꾼 곳이라 애정도 크다.
그는 법정 스님이 생전 가졌던 길상사 운영 방침도 소개했다. 모든 불자가 자랑스러워하는 아름다운 도량, 정혜결사 정신을 위한 일반 시민의 상설 도량,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도량,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위한 대중 도량, 승속이 함께하는 맑고 투명한 운영체제를 갖춘 도량이 그것이다.
덕조 스님은 “은사 스님이 하셨던 말씀과 시주하신 김영한 보살님의 뜻을 다시 환기하면서 길상사를 꾸며나갈 생각”이라며 “은사 스님 뜻을 받들어서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