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을 보면 문명이 보인다

안경을 보면 문명이 보인다

손원천 기자
손원천 기자
입력 2021-12-30 17:20
업데이트 2021-12-31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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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시스 로드/한지선 지음/위즈덤하우스/424쪽/2만원 

중세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린 안경
유라시아·동서양의 문명 교류 상징
아시아 안경의 주요 산지가 된 중국
기술 쇠퇴와 함께 근대 쇠락의 단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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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사용한 접이식 안경. 명대에 들어서면서 안경이 본격 유입됐고, 여러 기록에 따라 안경의 전입 시기와 유통 방식, 출처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위즈덤 하우스 제공
중국에서 사용한 접이식 안경. 명대에 들어서면서 안경이 본격 유입됐고, 여러 기록에 따라 안경의 전입 시기와 유통 방식, 출처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위즈덤 하우스 제공
한 시대를 톺아보는 도구는 여러 가지다. 대표적인 것이 차, 비단 등이겠다. 각각의 이동 경로를 따라 차마고도, 실크로드 등 인류 문명사의 중요한 전기가 마련됐다. ‘글래시스 로드’는 안경을 단서 삼아 들여다본 세계 문명사다. 중국의 해양 문명사를 연구하는 학자답게 중국, 특히 명나라를 중심에 두고 한국과 일본, 유럽, 이슬람 등의 안경 이동 경로를 종횡으로 들춰낸다. 저자는 이를 실크로드에 견줄 만한 또 다른 문명 교류의 루트라는 점에서 ‘글래시스 로드’라고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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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화가 스트라다노가 그린 풍속화. 유럽에선 15세기부터 안경 제작 기술이 발달하면서 거리에서도 누구나 안경을 쉽게 써보고 살 수 있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위즈덤 하우스 제공
이탈리아 화가 스트라다노가 그린 풍속화. 유럽에선 15세기부터 안경 제작 기술이 발달하면서 거리에서도 누구나 안경을 쉽게 써보고 살 수 있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위즈덤 하우스 제공
그런데 왜 하필 안경일까. 저자는 유리와 안경을 “네트워킹된 공간을 설명하는 증거이자 세계화를 상징하는 메타포”로 본다. 안경의 발명부터 전파까지의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한 시대의 짜임새를 엿볼 수 있다는 뜻이다. 안경은 당대에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안경이 중세 인류에게 가져다준 혁신은 저자의 표현처럼 “벨이 발명한 전화, 현대의 핸드폰과 같으며, 유비쿼터스의 TV·PC·인터넷망”과 같다. 현대에 와서도 미국 뉴스위크가 “지난 2000년 동안 가장 중요한 발명품 중 하나”라고 추켜세울 만큼 안경은 눈의 한계를 확장시켰고 생산성을 증대시켰다. 책은 유리의 발달 과정도 곁들였다. 안경의 역사와 밀접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안경은 13세기 유럽에서 처음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 세계로 전파된 건 ‘세계의 자석’ 몽골 제국을 통해서다. 13세기 몽골의 등장은 동서양의 직접적인 만남을 확대시켰다. 초원에서 인도양까지, 육상과 해상 물류의 융합과 순환도 가져왔다. 다양한 자원과 기술의 결합으로 탄생한 안경 역시 이런 교역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의 생필품’이 됐다. 저자는 안경의 발명과 전파를 “유라시아 교역 네트워크의 산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발명된 건 유럽이지만, 그 이전부터 무역과 문명 교류가 안경 제조 기술의 단초를 제공하고 성장을 견인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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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화가 신윤복의 풍속화에 묘사된 안경 쓴 선비. 16세기 임진왜란 때 조선에 유입된 안경은 17세기 중반 이후 그 수가 급속히 증가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조선의 화가 신윤복의 풍속화에 묘사된 안경 쓴 선비. 16세기 임진왜란 때 조선에 유입된 안경은 17세기 중반 이후 그 수가 급속히 증가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명나라에 유입된 건 14세기쯤으로 추정된다. 명대에 운영된 대규모 사절 파견과 조공 제도 등이 육상과 해양 교역의 네트워크 구실을 했다. 당시 중국의 장인들은 유럽에 버금가는 안경을 제작해 동아시아의 안경 수요를 빠르게 대체했다. 중국에서 뻗어 나온 안경 문화는 조선과 일본 등 동아시아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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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안경이 유입된 건 16세기 임진왜란 때로 추정된다. 이후 17~18세기 베이징에 다녀온 조공 사절들이 유리 시장 등에서 안경을 가져와 유통시키며 수가 증가했다. 조선 사람들은 그러나 점차 디자인과 기능이 우수한 유럽식 안경으로 돌아섰다. 중국 장인들은 렌즈 제조법이나 기능을 더 발전시키지 못했다. 질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과학적 시스템도 마련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저자는 이런 차이 탓에 19세기 이후 안경 기술의 주도권이 유럽으로 넘어간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는 사실상 근현대에 유럽이 ‘폭력의 우위’를 점하는 단초가 된 과학의 발달사와 빼닮았다.

저자는 “세계화 혹은 세계 체제라는 주제에서 동서 교류에 관한 동아시아의 방대한 자료들은 많이 다루어지지 않는 편이고, 특히 동아시아의 이국적인 상품들에 대한 기록은 여전히 미개봉 상태”라며 “안경도 그중의 극히 일부이지만 (책이) 이런 이국적 상품들을 끌어내는 단서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손원천 선임기자 angler@seoul.co.kr
2021-12-3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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