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들/필립 로스 지음/민승남 옮김/문학동네/288쪽/1만 3800원
소설가 필립 로스는 첫 자전적 에세이이자 유일한 자서전인 ‘사실들’에서 자신의 사적인 사건을 언급하는 것에 신경이 쓰인 나머지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말할 정도로 솔직한 고백을 들려준다. 이 책은 로스의 작품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 기원을 알 수 있는 한 인간의 고백록이자 한 소설가의 창작론이다. 문학동네 제공
특유의 냉소적인 유머로 유명한 로스는 책 제목에 걸맞게 자신의 인생과 그 시간을 지나온 자신의 태도에 대해 과감하게 털어놓는다.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 대학생 시절부터 작가로서 자신의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리기 직전까지를 그린 이 책에서 무엇보다 돋보이는 ‘사실’은 로스의 첫 번째 부인이다. 조세핀 젠슨이라는 가명으로 책에 등장한 그녀는 로스에게 “최악의 적이었으나 가장 위대한 창작 선생, 극단적 소설의 미학에 있어서의 탁월한 전문가”였다.
로스는 20대 초반 오래전부터 눈여겨온 네 살 연상의 젠슨에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했다. 이혼한 지 얼마 안 된 그녀와 함께 살게 된 로스는 부모의 품에서 느끼지 못한 자유를 만끽하지만 이내 그녀에 대한 신뢰를 잃고 헤어진다. 그녀는 로스 곁에 머물기 위해 날조와 과장을 반복했지만 로스는 자신을 받아 달라고 애원하는 그녀와 또다시 함께 지낸다. 서로를 얽어매는 그녀와의 끈질긴 악연에 로스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기 직전에 이를 정도로 괴로웠다고 회고한다. 불행한 결혼생활에서 받은 충격으로 정신분석 치료를 받았던 경험은 로스의 출세작인 ‘포트노이의 불평’에 배어 있다.
책의 말미에서 로스에게 답글을 보낸 주커먼은 로스가 지닌 내면의 욕망을 파헤치고 그의 자기기만을 꼬집는다. 로스가 이 책에서 얼마나 자신의 삶을 정확하게 묘사했는지, 젠슨에 대한 로스의 평가는 온당한지, 내면의 혼란을 미화하고 있지는 않은지 거침없이 비판한다. 주커먼의 입을 빌렸지만 작가 자기 자신에 대한 통렬하고 가차 없는 반성이다. ‘이렇게 솔직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자신의 속사정을 낱낱이 들춰낸 이 책은 그래서 흡인력 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2018-07-27 3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