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무릎 위에서 듣는 역사

할아버지 무릎 위에서 듣는 역사

입력 2010-08-28 00:00
업데이트 2010-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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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브리치 세계사】곰브리치 지음 비룡소 펴냄

오스트리아의 세계적 석학 에른스트 H 곰브리치(1909~2001)의 ‘서양미술사’는 32개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적으로 600만부 이상 팔렸다. 지금도 미술관 순례가 많은 유럽 여행을 떠나기 전에 꼭 읽어야 하는 필독서로 꼽힌다.

‘곰브리치 세계사’(박민수 옮김, 비룡소 펴냄)는 곰브리치가 청소년을 위해서 쓴 세계사 입문서다. “모든 이야기는 ‘옛날 옛적에’란 말로 시작한다.”로 말문을 여는 이 책은 1936년 초판이 나왔다. 곰브리치의 역사관은 “역사를 거대한 시간의 강물에 견줄 때 아주 작은 물방울에 불과한 개인의 삶들이 인류의 역사를 이룩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사건들 가운데 어떤 것이 대다수 인간의 삶에 영향을 끼쳤으며 우리의 기억에 가장 크게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란 단순한 물음에서 곰브리치는 세계사의 의미를 찾았다.

원시 인류의 등장부터 문자의 탄생, 여러 종교의 발전, 신대륙 발견, 산업 혁명, 두 차례의 세계대전 등 세계사의 흐름을 쉽고도 자상하게 들려준다.

막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독일의 나치는 초판이 나온 ‘곰브리치 세계사’를 금서로 지정했다. ‘반유대적 동기가 아니라 평화주의 관점을 가졌다.’는 어이없는 이유에서였다. 전쟁이 끝나고서 금서에서 풀린 ‘곰브리치 세계사’는 1985년 개정판을 출간하면서 저자가 직접 겪은 제2차 세계대전과 중국 역사 등을 추가했다.

예술사를 연구한 곰브리치가 세계사 책을 출간한 까닭은 그의 손녀 레오니 곰브리치가 설명해 준다. 곰브리치는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직후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어린이를 위한 역사책을 내고 싶어하는 책 편집자였던 친구와 연이 닿았다.

박사 논문을 쓰기에 지쳤던 곰브리치는 친구의 어린 딸과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학문적 글쓰기에 싫증 났던 그는 이 편지를 무척 즐겼다고 한다. “대부분의 문제는 복잡한 전문 용어가 아닌 쉬운 말, 총명한 아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던 곰브리치는 어려운 학문 주제를 어린이에게 편지로 쉽게 설명했다. 이 편지는 편집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90년대 들어 저서를 영어로 번역하게 된 곰브리치는 손녀에게 “‘곰브리치 세계사’를 다시 읽어 봤더니 정말로 많은 내용이 담겨 있더구나. 내가 봐도 훌륭한 책이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곰브리치는 “독자들이 필기하고 이름이나 연대를 외운다는 부담없이 느슨한 마음으로 읽어 나가길 바란다. 제대로 읽었는지 확인하려고 꼬치꼬치 질문도 않겠다.”고 머리말에서 밝혔다.

책을 읽노라면 할아버지가 손자, 손녀를 무릎에 앉히고 난로가에서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이 든다. 1만 7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2010-08-28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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