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 개인전
베네치아비엔날레 앞둔 ‘전성기’아르헨서 40년… 거점 옮겨 한국행
남미 에너지 응축된 회화도 전시
“어디서든 작업하는 마음 똑같이
내 삶 모든 것 표현한 것, 내 예술”
1984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현지 나무의 물성을 탐구한 조각·회화 작업을 펼쳐 온 김윤신 작가가 지난 19일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간담회에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정서린 기자
정서린 기자
나무에 매료돼 고국을 떠나 아르헨티나에서 40년간 뿌리내리며 독창적 시각예술을 일궈 온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89). ‘예술가가 돼야겠다’는 일념과 꾸준함으로 구순의 나이에 화업 인생의 ‘정점’을 맞은 그가 상업 갤러리에서의 첫 전시로 반세기 작업을 소개한다.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오는 4월 28일까지 열리는 개인전에 나온 원목 조각, 채색 나무 조각, 회화 등 51점의 작품은 저마다의 곡절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2008년 작 ‘내 영혼의 노래’.
국제갤러리 제공
국제갤러리 제공
“모두 제 생애 처음 있는 일이지요. 이번 기회에 한국에서 멈추며 더 좋은 작품을 세상에 남기고 가고 싶습니다.” 지난 19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의 목소리에는 설렘과 감격이 역력했다. 자신을 재발견해 준 고국에서 1년간 작업에 매진할 결심을 하고 아르헨티나에서 40년 살던 짐을 챙겨 왔다는 그는 새 전환점 앞에서 다시 감각을 벼릴 준비를 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지난해 남서울미술관에서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회화 작업이 다수 나왔다. 남미 특유의 작열하는 에너지와 생동하는 자연을 그대로 응축한 듯한 역동적인 색채와 형태가 캔버스 안이 비좁은 듯 꿈틀거린다.
어린 시절 집 울타리 수수깡에 물감을 칠하고 놀던 놀이에서 뿌리를 낸 ‘회화 조각’들은 남미 토속 문화의 영향을 받은 동시에 한국적 문양과 오방색까지 아우른 그만의 독자적인 작업이다. 코로나19 확산기 외출을 못 하면서 집에서 잡히는 재료로 시도한 작업으로, 캔버스에 물감 묻힌 나무 조각을 찍어 낸 회화 작업도 이때 활발히 구사한 것들이다.
겉껍질을 그대로 살리면서 나무의 속살과 대조시키고 자연스러운 명암을 만들어 낸 원목 조각은 40여년 전 그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립미술관에서 처음 전시하며 현지에서 예술가로 자리를 잡게 된 출발점이기도 하다.
아흔을 바라보며 그가 꾸는 꿈은 “동으로 가나, 서로 가나 작업하는 마음은 매한가지인” ‘동서남북 작가’가 되는 것이다. 그는 1935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나 1959년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한 뒤 1964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10여년간 학생들을 가르친 그는 1984년 아르헨티나의 나무를 만나며 현지로 이주했다. 올 2월 한국으로 거점을 옮겨 베네치아비엔날레 본전시 참여를 앞둔 그는 이미 ‘동서남북 작가’로 입신을 이룬 셈이다.
“예술은 끝이 없어요. 우리가 매일 아침과 저녁을 반복적으로 맞으며 그 속에서 살듯 삶이 바로 예술이죠. 내 삶의 흔적, 모든 것을 표현한 것이 제 예술입니다.”
2024-03-21 2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