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녹아내리고, 목소리는 도처에…매순간 바뀌는 ‘이상한 미술관’

눈사람 녹아내리고, 목소리는 도처에…매순간 바뀌는 ‘이상한 미술관’

정서린 기자
정서린 기자
입력 2024-02-28 13:24
수정 2024-02-28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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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미술관, 전관 할애한 최대 규모 전시로
세계적 설치미술가 필립 파레노 예술 조명
인공두뇌 ‘막’으로 전시 전체 조율·상호작용
작가 “외부에 등돌린 미술관에 틈 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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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파레노, 내 방은 또 다른 어항, 2022, 헬륨, 마일라 풍선, 가변크기. 작가·글래드스톤 갤러리 제공 ©필립 파레노
필립 파레노, 내 방은 또 다른 어항, 2022, 헬륨, 마일라 풍선, 가변크기.
작가·글래드스톤 갤러리 제공 ©필립 파레노
인간의 목소리인지 기계의 잡음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도처에서 웅성거린다. 흙으로 범벅된 ‘작고 더러운’ 눈사람들은 시시각각 녹아내리고, 물고기 풍선은 어항 속을 헤엄치듯 전시장 곳곳을 떠다닌다. 사람 없는 피아노에서는 연주가 흘러나오고 천정에서는 오렌지빛 눈이 서걱서걱 내려 전시장 안에 소복이 쌓여간다.

빛과 온습도 등이 철저히 통제된 화이트큐브 안에 ‘작품을 모시는’ 미술관에서 목격하는 이 생경하고 소란한 풍경은 예술과 전시에 대한 관념을 무너뜨리며 “새롭게 경험하고 느껴보라”고 제안한다.

주인공은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설치미술가로 꼽히는 프랑스 작가 필립 파레노(60). 리움미술관은 개관 이후 처음으로 6개 공간 전관을 그에게 내주며 작가의 아시아 최초·최대 규모 서베이 전시 ‘보이스’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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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설치미술가 필립 파레노. 리움미술관은 전관을 할애해 그의 초기작부터 신작 40여점을 아우르는 아시아 최초, 최대 규모 서베시 전시를 마련했다. 리움미술관 제공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필립 파레노. 리움미술관은 전관을 할애해 그의 초기작부터 신작 40여점을 아우르는 아시아 최초, 최대 규모 서베시 전시를 마련했다.
리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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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파레노, 막(膜), 2024, 콘크리트, 금속, 플렉시글라스, LED, 센서, 모터, 마이크, 스피커, 1360 x 112.7 x 112.7 cm 작가·리움미술관 제공
필립 파레노, 막(膜), 2024, 콘크리트, 금속, 플렉시글라스, LED, 센서, 모터, 마이크, 스피커, 1360 x 112.7 x 112.7 cm
작가·리움미술관 제공
야외 데크에 새롭게 설치된 높이 13.6m 크기의 대형 타워이자 일종의 인공두뇌인 ‘막’(2024)이 그 출발점이다. 42개 센서를 달고 있는 ‘막’은 기온, 습도, 풍량, 소음, 대기오염도, 진동 등 외부 환경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내부 전시공간에 들여보내고 작품들을 활성화하고 상호 작용한다. 내부 전시장에 매달린 스피커는 전시장의 소리와 목소리를 흡수해 반응하며 또 다른 새로운 소리로 내보낸다.

작가는 이렇게 데이터 연동, 인공지능(AI), 디지털 멀티플렉스(DMX) 기술을 망라하며 1986년 첫 작업부터 올해 신작까지 40여년간의 대표작 40여점을 꿰뚫어 리움미술관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 혹은 ‘자동 기계’처럼 작동하게 한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파레노는 “갇힌 공간으로 외부 세계를 향해 등돌린 공간인 미술관에 틈을 내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센서를 통합하면 타워 안에 모든 걸 예민하게 느끼는 캐릭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외부 데이터를 언어화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캐릭터에 인간의 목소리를 부여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바로 이러한 인공지능 ‘막’이 만들어낸 목소리 ‘델타 에이’(δA)로, 배우 배두나의 목소리를 입혀 AI가 만들어낸 가상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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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갤러리에 전시된 차양 연작, 2016-2023, 플렉시글라스, 전구, 네온 튜브, DMX 제어기, 가변크기 작가·리움미술관 제공
그라운드갤러리에 전시된 차양 연작, 2016-2023, 플렉시글라스, 전구, 네온 튜브, DMX 제어기, 가변크기
작가·리움미술관 제공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흐릿한 초현실적인 풍경의 전시장에서 실재와 가상이 혼재된 목소리가 끊임없이 떠도는 데는 목소리가 관람객들의 주의를 끌고 관계 맺는 기반이 되길 바라는 작가의 의도가 반영돼 있다.

파레노가 동료 독일 퍼포먼스 예술가 티노 세갈에게 의뢰한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그라운드갤러리로 내려가면 ‘움직임의 예술’ 그 자체가 된 전시장을 체험할 수 있다. 벽은 공간을 가로질러 움직이고, 조명은 깜빡이며 춤을 추고, 말풍선 같은 투명 풍선 수백개는 천정을 부유한다.

“예술은 늘 미완”이라고 여기는 작가답게 전시는 5개월여간의 기간 동안 ‘완결’ 없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태로 이어진다.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이 “작업이 끊임없이 외부 요소에 자극받으며 상호 교류를 이어나가기 때문에 우리 인생처럼 예측불가하게 변화하는 공연 같은 전시”라고 말한 이유다.

전시장을 찾기 전, 작가가 말한 관람 팁을 기억해두자.

“내 마음대로 헤매고 작품에 얼마든지 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해 달라. 영화관처럼 정해진 규칙은 없다.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라. 어떤 시간을 보낼지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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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7일까지 리움미술관에서 열리는 필립 파레노의 ‘보이스’ 전시 전경 작가·리움미술관 제공
7월 7일까지 리움미술관에서 열리는 필립 파레노의 ‘보이스’ 전시 전경
작가·리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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