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문화의 홍수가 아무리 거세도… 문학의 힘 무시 못해”

“영상문화의 홍수가 아무리 거세도… 문학의 힘 무시 못해”

입력 2013-05-28 00:00
업데이트 2013-05-28 00:0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제7차 한·중작가회의… 韓中 소설가 이현수·판샤오칭 대담

“영상이 글의 행간을 옮길 수 있을까. 문장과 문장 사이의 공간과 침묵, 말줄임표와 마침표의 느낌을 영상이 오롯이 담기는 불가능할 것이다.”(이현수)

“삶의 온갖 양상을 표현하는 문학만의 방식이 있다. 후세가 지금의 사회를 이해하고 인식하는 데 가장 적합한 것은 문학이라는 형식 아닐까.”(판샤오칭)

이미지 확대
지난 26일 제7차 한·중작가회의가 열린 중국 푸젠성 샤먼시에서 만난 소설가 이현수(왼쪽)와 판샤오칭. 두 작가는 “영상문화의 홍수가 제아무리 거세도 문학이라는 물줄기는 여전히 힘이 세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지난 26일 제7차 한·중작가회의가 열린 중국 푸젠성 샤먼시에서 만난 소설가 이현수(왼쪽)와 판샤오칭. 두 작가는 “영상문화의 홍수가 제아무리 거세도 문학이라는 물줄기는 여전히 힘이 세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한국과 중국의 대표적인 두 여성 소설가가 영상문화 시대 문학의 가치를 함께 고민하고 있다. 소설가 이현수(54)는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신기생뎐)의 원작자이고, 중국 소설가 판샤오칭(范小靑·58)은 직접 극본을 써 본 인기 드라마 작가이기도 하다. 이들은 “문학과 영상이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큰 물줄기는 같지만 결국 지류는 다르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두 여성 작가가 지난 26일 제7차 한·중작가회의가 열린 중국 푸젠성 샤먼시에서 만났다. 1996년 제1회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씨는 소설집 ‘토란’과 드라마로도 각색된 장편 ‘신기생뎐’ 등을 쓴 중견 작가다. 제4회 루쉰문학상을 수상한 판샤오칭은 국내 독자에게는 ‘맨발의 완선생’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다. 2011년 제5차 한·중작가회의에도 참석했던 두 사람은 이번에는 소설 분과에서 파트너가 돼 서로의 작품 ‘향화’(판샤오칭)와 ‘용의자 김과 나’(이현수)를 바꿔 읽었다. 화제는 문학과 영상문화의 문제에서부터 여성 작가의 정체성으로까지 종횡무진 옮겨 다녔다.

드라마 ‘푸에씨 집에 딸이 있네’의 극본을 썼던 판샤오칭은 “스트레스에 시달려 한 편만 쓰고 드라마 일을 그만뒀다”고 운을 뗐다. 제작자와 감독이 작품의 대중성과 흥행을 강요하는 데 버틸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원고지 2000장짜리 소설과 500장짜리 드라마 극본의 보수가 비슷할 정도로 중국 드라마 작가의 보수와 위상은 크게 높아졌다”면서도 “순수문학은 물질적 가치보다 정신적 가치가 중요하다. 소설은 나를 위해 쓰지만 드라마는 남을 위해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기생뎐’이 원작의 취지와는 크게 다른 방향으로 각색되며 홍역을 치렀던 이씨도 “영상매체와 소설은 엄연히 다르다”고 주장했다. ‘신기생뎐’은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막장 드라마’라는 비판을 받았고 당시 그는 “다시는 드라마나 영화 판권 계약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는 “드라마의 수준이 크게 높아졌지만 여전히 상업적인 작품들의 영향이 크다”면서 “과거 문학작품을 원작에 가깝게 각색해 방영하던 드라마처럼 순수문학과 영상문화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늘어나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화는 여성 작가의 정체성 문제로 이어졌다. 판샤오칭은 “여성 작가의 작품에는 여성이라는 자의식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는데, 나와 이 작가는 모두 후자에 가까운 것 같다”고 작품 세계를 평했다. 두 사람이 여성스러운 문체나 내용보다는 이야기의 보편적인 힘에 주목한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문학이 심리뿐만 아니라 생리적 표출의 결과라는 점에서 작품에서 여성성을 완전히 탈피할 수는 없다는 지점에도 동의했다. 판샤오칭은 “예컨대 군대를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군인에 대한 글을 쓸 때 세밀한 묘사보다는 남과 다른 시각을 중요시하는 게 그런 이유”라고 말했다. 생물학적 성별 차이가 작품의 차이로 나타난다는 견해다. 최근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을 다룬 장편 ‘나흘’을 낸 이씨도 “분단국가에서 남성들은 군대 문제를 자주 다루지만 여성들은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면서 “군대처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분야를 다룰 때는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성공하겠다는 마음으로 도전하는 경우가 있다”고 덧붙였다.

21세기가 문학을 벼랑 끝으로 내몬 시대라는 진단에도 의견을 같이했다. 그리고 그 위기 앞에서도 창작의 자세만큼은 결코 위축되지 않아야 한다는 작가 정신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같았다. “소설가는 쏟아부은 노력만큼 거두지 못하는 사람이다. 문학의 진정한 가치란 본래 창작의 과정에서 빛나는 것이다.”

글 사진 샤먼(중국 푸젠성)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2013-05-28 21면
많이 본 뉴스
종부세 완화, 당신의 생각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종합부동산세 완화와 관련한 논쟁이 뜨겁습니다. 1가구 1주택·실거주자에 대한 종부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종부세 완화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완화해야 한다
완화할 필요가 없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