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희망은 고통과 더불어 있는 것”

김훈 “희망은 고통과 더불어 있는 것”

입력 2010-11-11 00:00
업데이트 2010-11-1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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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내 젊은 날의 숲’ 출간

 “돌이켜보니,나는 단 한 번도 ‘사랑’이나 ‘희망’ 같은 단어를 써본 적이 없다.(중략) 여생의 시간들이,사랑과 희망이 말하여지는 날들이기를 나는 갈구한다.”소설가 김훈(62) 씨가 ‘공무도하’ 이후 1년여 만에 펴낸 신작 장편소설 ‘내 젊은 날의 숲’(문학동네)의 ‘작가의 말’ 중 일부다.하덕규가 부른 ‘숲’의 한 구절을 딴 제목까지 뭔가 낭만적인 이야기를 기대케 한다.

 그러나 소설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아주 흐릿하게 희망의 빛을 보인다.“세상의 야만성을 잘라내고 희망만 있는 삶은 있을 수 없다”는 작가에게 숲은 생명과 고통이 공존하는 양면성의 공간이다.

 “고통의 켜를 독자들이 잘 들여다보기를 바랍니다.고통을 잘라버리고 행복과 희망 쪽으로 가지 말고 같이 끌어안고 가는 삶이 올바른 삶이라고 생각해요.”소설은 비무장지대 내 수목원에서 식물의 세밀화를 그리는 계약직 화가인 주인공의 남루한 삶을 그린다.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다지만 실체가 모호한 할아버지의 손녀이자,뇌물죄로 구속된 부패한 하급공무원의 딸인 그는 원치 않는 슬픔과 메마름을 안고 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가 도저히 끊어버리고 돌아설 수 없는 것들,끊어내고 싶지만 끊어낼 수 없는,만유인력과도 같은 존재의 탯줄 그리고 나와 인연이 닿아서 내 생애 속으로 들어온 온갖 허섭스레기들의 정체를 명확히 들여다보려면 돈이 다 떨어져야 한다.”(47쪽)소설은 굵직한 사건이나 꽉 짜인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삶의 장면들이 중첩되면서 흘러간다.

 작가는 “인간의 삶이 그렇게 구조적인 이야기를 가진 건 아니기에 서사구조를 억지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며 “시대와 역사의 고통과 아주 아름다운 자연,그 사이에 끼어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인간의 가엾은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과거로부터 내려온,거의 헤어나기 불가능한 유전적인 고통이 인간을 지배하는 모습이죠.탯줄로 태어난 고통을 거역할 도리가 없지만,인간은 끊임없이 거기에 저항하고 도망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작가의 말’에서 내비친 것처럼 김씨는 가련한 삶의 한쪽 구석에 아련한 희망의 싹을 틔운다.이는 그의 작품 세계에서 일종의 전환의 시도이자 변화를 예고하는 대목으로도 읽힌다.

 “앞으로 사랑과 희망을 말하겠다는 것은 장담할 수 없는 소망이죠.이번에는 멀리서 어른어른한 정도로 그려놓았어요.나이를 먹어가니까 사람에 대한 연민 같은 게 생기는 거겠죠.”희망을 뚜렷이 드러내지 않은 것에 대해 그는 “희망이라는 것이 고통과 더불어 있는 것”이라며 “희망이나 행복,소망만 따로 있을 도리가 없으며,근거 없이 희망만을 말하는 것은 위태롭고 무책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여행의 소산’이라고 밝혔듯,이번 소설은 지난해 가을부터 올해 초여름까지 휴전선 이남의 여러 지방을 여행하면서 들여다본 세상과 자연,사람의 ‘풍경’을 재구성한 글이다.

 김씨는 “숲에서 영감을 얻었다기보다는 치밀히 관찰한 것”이라며 “글 쓰는 것은 내게 노동으로,써야겠다는 의무감과 노동의 고달픔은 확실히 알지만 영감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글의 형식과 내용,즉 문체와 주제를 분리하기란 불가능하다고 확신한다.어느 작품을 쓸 때마다 주제를 표현해낼 수 있는 문체를 만들어내야 하고,그런 문체가 확보되지 않는 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대개 실패하기 십상인 도전이지만 포기할 수는 없어요.나는 고정된 문체가 없습니다.‘칼의 노래’가 짧고 급한 문체였다면,이번에는 느리고 설명적인 문체라고 할 수 있어요.이번 작품은 약간의 전환을 시도했고,주인공이 젊은이여서 행복했어요.그러나 내가 세상에 내놓을 만한 작품은 또 다음에 나올 것 같습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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