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툰 한잔 쭈욱~ 들이켜 보실래요

카툰 한잔 쭈욱~ 들이켜 보실래요

입력 2010-03-22 00:00
업데이트 2010-03-22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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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작가 35명이 빚은 서정카툰집 ‘술’ 출간

아버지는 소주잔 가장자리를 쳇바퀴 돌며 술의 길을 간다. 아니 갈 수 없다면 천천히 가는 것은 어떠한지.(‘아버지의 술잔’·박비나) 이별의 아픔을 잊기 위해 술병을 총처럼 머리에 겨눈다. 오늘밤만 술에 취해 잠시 죽으려고. (‘이별의 아픔’·오영) 치열한 전쟁터 하늘을 지나가는 폭격기에서 폭탄주가 떨어진다면 술기운에 화해하고 평화가 오지 않을까.(‘폭탄주’·그림·최덕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금쯤 천국이라는 작은 선술집에서 민주라는 소주를 나누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민주주의를 위하여’·남동윤) 애주가 남편을 둔 여인네의 비녀의 모양은? 병따개 모양. (‘애주가 남편을 둔 여인의 비녀’·고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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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카툰 한 잔 쭈욱 들이켜 보는 것은 어떨까. 최근 술을 테마로 한 서정카툰집 ‘술’(매직북 펴냄)이 출간돼 눈길을 끈다. 한국 카툰계의 큰별인 사이로·김마정·조관제 화백을 비롯해 ‘고인돌’의 박수동 화백, 그리고 강태용·고구마·모해규·손영목 화백에 이르기까지 국내 카툰의 전통과 현재를 대표하는 작가 35명이 술이라는 창을 통해 우리네 인생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있다. 술에 얽힌 카투니스트들의 엉뚱한 상상력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느껴 볼 수 있는 기회다. 129편의 작품들이 때로는 답답한 가슴을 뚫어주는 시원한 맥주로, 때로는 쓰린 가슴을 달래주는 독한 소주로, 때로는 고향과 같이 포근하고 구수한 막걸리로 다가온다. 각 작품마다 작가들이 짧은 글과 에세이를 덧붙여 카툰을 마시는 즐거움을 늘렸다.

지난해 한국카툰협회의 가을 기획전 ‘술愛(애)바퀴’에 출품된 작품과 인터넷 포털사이트 야후에 정기 연재됐던 작품 가운데 일부를 묶은 이번 카툰집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제작 지원을 통해 빛을 보게 됐다.

‘카툰’은 만화를 통칭하는 영어 단어. 단 한 칸의 그림에 세상만사를 해학적으로 담은 최초의 만화이자 만화의 시(詩)로 보면 된다. 특히 서정카툰은 정치비평적인 성격이 강한 시사카툰과는 궤를 달리한다. 일상적인 상황을 부자연스럽게 만들어 웃음을 유발하고, 관습적인 생각으로부터 독자들을 탈출하게 만든다.

조관제 한국카툰협회 회장은 “디지털 등 새시대를 맞아 카툰이 과거 명성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이번 작품집을 통해 한국 카툰은 또 한 걸음 발전할 것이다. 취한 걸음으로 잊히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2010-03-22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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