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미냐 친중이냐’ 전·현직 대통령 정면 충돌한 필리핀

‘친미냐 친중이냐’ 전·현직 대통령 정면 충돌한 필리핀

류지영 기자
류지영 기자
입력 2024-05-01 17:27
수정 2024-05-0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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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정계를 양분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왼쪽) 대통령과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 AP·EPA 연합뉴스
필리핀 정계를 양분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왼쪽) 대통령과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 AP·EPA 연합뉴스
필리핀 정계를 양분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과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국가 외교 기조를 두고 정면 충돌했다. 친미 성향 마르코스 대통령이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친중 비밀협정’을 공론화하면서 두 사람 간 ‘전략적 동맹’ 관계가 파국을 맞았다.

1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전날 페르디난드 마르틴 고메스 로무알데스 필리핀 하원의장은 “두테르테 행정부 시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맺은 ‘비밀 신사협정’에 대한 국정조사에 착수한다”면서 “필리핀 하원은 마르코스 대통령의 두테르테 비판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앞서 두테르테 전 대통령 대변인 출신 해리 로케는 올해 3월 “두테르테 정권이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에 구두 합의를 맺었다”고 폭로했다.

필리핀은 중국의 무력 도발에 대응하고자 1997년 세컨드 토마스 암초(중국명 ‘런아이자오’·필리핀명 ‘아융인’)에 퇴역 미군함 시에라 마드레호를 고의로 좌초시킨 뒤 ‘군함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병력 10여명을 배치했다. 중국은 수시로 물대포를 쏴 시에라 마드레함 보급을 방해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중국은 남중국해에 추가 군사 시설을 짓지 않고 필리핀도 세컨드 토마스 암초에 추가 건설·보수 작업을 하지 않는다’고 시 주석과 은밀히 합의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힘을 빌어 중국 견제를 강화하기 바라는 마르코스 대통령은 “두테르테가 중국에 잘 보이려고 필리핀 영토와 주권을 훼손했다”며 진상 규명을 공언했다. 마르코스를 따르는 정치인들도 “두테르테를 반역죄로 체포해야 한다”고 힘을 보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 전현직 대통령은 ‘공동 운명체’였다. 2022년 대선에서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딸 사라 두테르테는 마르코스 대통령의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뛰었고 현재 교육부 장관직도 맡고 있다. 그러나 최근 마르코스 대통령이 6년 단임제를 페지하고 영구 집권을 가능하게 하는 개헌을 추진한다는 의혹이 제기된 뒤로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자신의 영향력 위축을 우려해 그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이에 마르코스 대통령도 그를 잠재우고자 ‘비밀협정’ 카드를 꺼냈다고 전문가들은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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