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내는 美·中 ‘포스트 김정일’ 움직임

속도내는 美·中 ‘포스트 김정일’ 움직임

입력 2011-12-21 00:00
업데이트 2011-12-21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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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에 따른 북한 동향은 남북한은 물론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와 직결된다. 북한 후계구도의 불안정성으로 급변사태가 일어날 경우 미·중 충돌로 이어질 소지가 있어 한반도는 세계의 ‘화약고’로 떠오른 셈이다. 주변 4강은 일단 북한체제의 연착륙을 선호하는 속내를 드러내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 美, 누가 됐든 조속안정 선호

미국 정부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명의로 19일(현지시간) 김 위원장 사망에 조의를 표했다. 성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외교적 격식은 차렸지만 분명하게 ‘조의’(condolence) 표명을 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정부가 이번 사안을 놓고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성명은 김 위원장의 공식 직함을 표기했다. 국가명도 평소 쓰던 ‘북한’이란 약칭 대신 정식 명칭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있는 그대로 사용했다. 미국 정부가 이번에도 국익을 최우선에 두는 외교 기본원칙을 충실히 따른 셈이다.

이런 분위기는 평소 북한에 대해 차가운 논평을 자주 내놨던 빅토리아 눌런드 국무부 대변인이 이날만큼은 “우리는 북한의 애도기간을 존중할 것”이라고 하는 등 우호적인 표현으로 일관한 것에서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이날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날계란을 옮기듯 발언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구사했다. 혹여 북한을 자극할까 신경 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미국 정부의 반응을 종합하면, 미국은 김정은이 됐든 누가 됐든 미국에 도발하지 않는 한 북한의 새 지도체제를 인정하기로 내부적으로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또 가급적 북한이 김정일 체제의 시스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혼란 없이 안정을 굳히기를 바라며, 그에 따라 북·미대화를 조속히 재개했으면 하는 속내를 드러냈다. 이 같은 자세는, 북한이 혼란에 빠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기존 체제대로 유지되는 게 미국의 이익에 더 부합한다는 계산의 발로로 풀이된다. 북한 체제가 동요하는 시나리오는 미국 입장에서 득실이 불투명한 반면, 기존 체제 유지에 따른 득실은 이미 나와 있기 때문이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미국 국내 사정 때문에 북한의 혼란을 바랄 여유가 없다.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로 미국은 더 이상 대외문제에 무력으로 개입하기 힘든 상황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제 겨우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을 수습하면서 국방예산 감축에 들어갔다. 이러니 북한은 물론 중국과의 정면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급변사태는 미국으로서는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일 것이다. 한반도 정정이 불안해질 경우 글로벌 경제에 악재가 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내년 재선을 앞두고 경제회복이 급선무인 오바마로서는 북한 등 안보 현안들이 추가로 악화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상황이다.

결국 미국 입장에서 걱정되는 시나리오는 북한의 새 지도부가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핵실험 등 군사적 도발을 선택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북한 정권의 혼란으로 핵이 통제불능 상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유화적 제스처를 쓰는 것은 북한의 새 지도부나 군부가 강경노선을 택할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中, 대북외교 ‘특수딱지’ 떼기?

중국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 김정은 체제의 조속한 안정에 올인하는 양상이다.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 국무원, 중앙군사위원회 명의로 19일 발표한 조전을 통해 ‘김정은 영도’를 처음으로 인정한 데 이어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20일 오전 주중 북한대사관을 찾아 조문하면서 또다시 ‘김정은 영도’를 언급함으로써 중국의 의중을 드러냈다.

특히 후 주석 조문은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 북한 당국의 발표 후 이틀이 지난 시점에 장쩌민(江澤民) 당시 주석과 함께 조문한 것보다 하루 빠르다. 동행인사들도 당시보다 거물급이다.

중국중앙(CC)TV 등 관영 언론들도 김정은을 집중 조명하면서 북한이 김정은 체제로 바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베이징에서 발행되는 신경보는 “동북아 안정은 북한의 안정을 필요로 한다.”면서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북한의 안정이라고 강조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중국이 과도기의 북한에 믿을 만한 지지 국가가 돼야 하며 외풍을 막아 줘야 한다.”는 사설을 게재했다.

중국이 신속하게 김정은 체제를 인정하는 등 안정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중국은 한반도가 요동치는 것을 원치 않고, 그런 차원에서 김정은을 내세운 북한의 입장을 존중하는 것”이라면서 “북한을 이끌 새 지도자가 김정은이든 아니든 중국은 북한의 조속한 안정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중국이 기존 북·중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국가끼리의 정상적 외교관계가 아닌 당 대 당 등 ‘특수관계’로 점철된 대북외교를 정상화시키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미국과 함께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하면서 자국의 외교행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는 현실에서 더 이상 북한과의 ‘특수관계’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졌다는 내부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19일 중국이 발표한 조전은 공산당과 전인대, 국무원, 중앙군사위 등 4개 기구 명의로 북한의 노동당 중앙위원회 등 5개 기구에 보냈다. 김 주석 사망 때 최고실력자 덩샤오핑과 장 주석, 리펑(李鵬) 총리, 차오스(喬石) 전인대 상무위원장 개인 명의로 보낸 것과 대비된다. 조전을 양제츠(楊??) 외교부장이 주중 북한대사관 대리대사를 불러 전달한 것에서도 공식외교 관계로의 전환 의도가 읽힌다.

중국과 북한은 김 위원장이 생전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비공식방문’을 표방하면서 돌아갈 때까지 모든 일정을 비밀에 부쳐 왔다.

하지만 중국 내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비밀유지가 힘들어졌고, 중국은 북한 측에 공식적인 외교관계로의 전환을 지속적으로 요청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북·중 관계가 국가 대 국가로 정상화됐는지는 향후 김정은의 방중 등에서 확실하게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2011-12-21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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