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가에서 증언하는 사위 빈라덴과 부인

처가에서 증언하는 사위 빈라덴과 부인

입력 2011-05-12 00:00
업데이트 2011-05-1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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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남편과 순교 결심”… “사위는 소탈하고 겸손”

“나는 당신과 함께 순교하기를 원하며, 당신이 살아있는 한 떠나지 않겠어요.”

9·11 테러를 앞두고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함께 지내던 아내 두 명에게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 줄 수 있다고 말했을 때 예멘 출신 부인인 아말 아메드 알-사다는 이처럼 분명하게 자신의 뜻을 밝혔다.

빈 라덴의 5번째 부인으로 현재 29살인 알-사다는 최근 미군의 빈 라덴 사살 작전 당시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의 은신처에 함께 있다가 다리에 총상을 입었으며 현재 파키스탄 당국의 보호 아래 있다.

AP통신은 아버지 등 알-사다의 친정가족들이 살고 있는 예멘의 지방도시 이브를 찾아 사위 빈 라덴과 딸 알-사다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가족들은 딸이 1999년 말 결혼 후 이듬해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해 만났으며 더는 재회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브는 수도 사나에서 남쪽으로 160㎞ 떨어져 산들 사이에 둥지를 튼 농촌지역으로, 알-사다 가족들은 2층짜리 집에 살고 있었다.

가족들은 알-사다가 평범하지만 의지가 확고하고 용기있는 젊은 여성이라며, 종교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근본주의자는 아니라고 말했다. 고교를 중퇴했지만 지식 습득에 흥미를 보였으며 주어지는 평범한 일상 이상의 것을 알고 싶어했다고 전했다.

또 친구와 가족들에게는 항상 “역사에 기록되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사촌인 왈리드 하셈은 전했다.

이렇게 지내던 알-사다는 마침내 1999년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됐다.

큰 언니의 남편이 신붓감을 찾는다는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사우디 남성의 제안을 갖고 삼촌 집에 찾아온 것이다.

알-사다에게는 빈 라덴이 사우디의 믿음이 독실하고 존경받는 집안 출신이라는 말이 전달됐고, 알-사다는 중요한 선택의 길에서 “신으로부터 받은 사명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바로 생각을 밝혔다.

알-사다의 삼촌인 하셈 알-사다는 당시 자신은 신랑감이 1998년 케냐와 탄자니아 주재 미국대사관들에 대한 폭파 혐의로 미국으로부터 수배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바로 혼인 절차가 진행되면서 수주 후 알-사다 가족과 빈 라덴 대리인 간 혼인계약서가 서명되고 빈 라덴은 예멘 전통에 따라 5천달러를 신부 가족에게 전달했다.

이후 2차례의 혼인 잔치를 벌인 뒤 알-사다는 예멘을 떠나 두바이와 파키스탄을 거쳐 아프간으로 가서 신랑과 결합했다.

9·11 테러 전인 2000년 가족들은 알-사다와 그녀가 낳은 딸 아이 사피야를 만나러 아프간 방문길에 나섰지만 이는 엄청난 고행길이었다.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한 호텔에서 빈 라덴의 무장조직원들 감시아래 20일 이상을 보내야 했는데, 이들 감시자 중 2명은 가족들이 예멘을 떠나올 때 같은 비행기에 탄 사람들이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어느날 밤 가족들은 차량으로 아프간 국경으로 갔고, 거기에서 다른 차량으로 6~7시간을 이동해 무자헤딘들이 보호하는 대형 텐트에 도착했다.

텐트 안에는 지하 통로가 있었고, 이 통로로 약 30분간 걸어간 뒤 밖으로 나와 다시 차를 타고 빈 라덴이 머무는 동굴로 갔다.

거기에서 딸의 반가운 인사를 받았고, 다음날 아침 빈 라덴은 알카에다 지도부 및 아프간 부족 관계자들과 함께 도착해 축포 21발과 수십명이 모인 성대한 오찬으로 처가 가족들의 방문을 환영했다.

알-사다의 아버지 아메드 압델-파타 알-사다는 당시 빈 라덴은 친절하고 기품있는 모습이었다고 회고하면서 사위가 소탈하고 겸손했으며, 진심이 깃들여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위는 특히 파키스탄에서 오래 머문 것에 대해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보안문제 때문이라며 사과하기도 했다.

한 사촌에 따르면 특히 방문 마지막 날에 빈 라덴은 두 아내, 즉 알-사다와 시리아 출신의 다른 부인에게 아프간에 자신과 계속 머물거나 그녀들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러자 알-사다는 “나는 당신과 함께 순교하길 바라며 당신이 살아있는 한 당신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라고 바로 결심을 보여주었고, 빈 라덴이 재차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하자 “나는 결정했다”고 못박았다.

당시 알-사다는 아버지에게 “내 생활이 아프간의 동굴 사이를 오가는 게 사실이지만 이처럼 고달픈 생활에도 나는 오사마와 있는 게 편합니다”라고 말했다.

한 사촌은 빈 라덴이 당시 처가 식구들에게 “세계에 큰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었다며, 알-사다의 아버지는 9·11 테러 뉴스를 들은 뒤 “오사마 빈 라덴이 한 일이군”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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