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민과 소통하는 농업용어/라승용 농촌진흥청장

[기고] 국민과 소통하는 농업용어/라승용 농촌진흥청장

입력 2018-07-02 17:32
수정 2018-07-02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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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 ‘유인’, ‘시비’. 얼핏 들으면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한 의미 전달이 안 되는 이런 낱말은 농업 전문용어다.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초창기 농촌진흥청 부서 중 ‘수도과’가 있었는데 수도라는 말만 보고 ‘거기서 수도도 고쳐 주느냐’는 민원을 심심치 않게 접하기도 했다.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순화한 공공언어가 보편화되지 않은 시절의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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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승용 농촌진흥청장
라승용 농촌진흥청장
농업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유인’이나 ‘시비’라는 단어를 접하고 농업과 연결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나 설명을 곁들여 유심히 살펴보면 농업에서 쓰는 ‘정지’(整地)는 땅을 고른다는 뜻이고, ‘유인’(誘引)은 과일나무 가지를 잡아 주는 것을 말한다. ‘수도’(水稻)는 논에 물을 대서 심는 벼를, ‘시비’(施肥)는 거름 주는 것을 이르는 농업 전문용어다.

근대 농업기술 용어의 많은 부분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식 한자어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지 못했다. 이런 낱말이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 있고, 지금도 농업 교과서에 그대로 쓰이고 있어 안타깝다.

정책이 국민에게 전달되는 여러 통로 중 공공언어만큼 직접적이고 설득력 있는 분야도 없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공공기관의 언어는 일반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국민 눈높이에 맞춰 바르고 통일성 있게 사용돼야 한다.

농촌진흥청에서는 농업 정책의 효율적 소통을 위해 어려운 농업용어를 쉽게 바꾸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일본식 한자 조어가 많은 농업용어를 한글로 풀어 1971년에 ‘한글 농업용어’를 발간했다. 이어 사용이 불편하거나 전혀 사용하지 않는 말을 빼고, 새로운 농업용어를 추가해 1982년에 ‘알기 쉬운 농업용어’를 다시 발간했다. 이후에도 지금까지 총 네 차례에 걸쳐 증보판을 만들었다.

최근 2003~2016년 발간한 자료 6만 2000여건을 대상으로 농업용어 사전에 들어 있는 5000여개 단어가 어떻게 쓰였는지를 빅데이터로 분석했다. 이 결과 쉬운 용어를 사용하는 비중이 해마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진흥청 발간 자료에 들어 있는 낱말 가운데 쉽게 풀어 쓴 용어가 2003년 27%에서 2016년 57%로 증가한 것이다. 문헌 특성상 법령집에는 여전히 어려운 용어가 사용되고 있었지만, 일반적인 농업기술 설명서는 일반 국민이나 농업인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용어로 쓰이고 있다.

농업 기술의 영향이 미치는 범위가 농업에 국한되지 않고 일반 국민의 삶까지 넓어짐에 따라 농업 전반에 대한 내용을 포괄적으로 설명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농업은 국민에게 식량을 생산하는 막중한 역할뿐 아니라 그 존재 기반 자체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여러 가지 공공적인 역할을 해내고 있다. 농업의 다원적 가치는 그 자체로 공공성을 갖는다. 공공성을 갖는다는 말은 수익자가 온 국민이라는 말과도 통하기 때문이다.

8월이면 광복 73주년이자 정부 수립 70주년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일본식 농업용어를 알기 쉬운 우리말로 다듬고 널리 쓰일 수 있게 알리는 일은 국민들에게 ‘설명의 의무’를 다하기 위한 당연한 노력이다.
2018-07-0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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