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어지는 이주자들’, 1941년, 제이컵 로런스.
1861년부터 1865년 사이 미국은 내전인 시민전쟁을 겪었고 전쟁 후 흑인들은 갑자기 새로운 세상과 조우하게 됐다. 남부에 주로 살던 흑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미국 전역으로 이동한 현상으로 ‘흑인 대이주’라 불리는 큰 사건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북부의 노동력 감소도 흑인들의 탈남부화를 재촉했다. 이로 인해 뉴욕, 시카고 등 대도시로 이주한 흑인들은 빠르게 도시의 일원이 됐고 커뮤니티를 형성하면서 영향력을 키워 나갔는데 대표적인 지역이 할렘이다.
흑인들이 할렘으로 밀려 들어오자 백인들은 이 지역을 떠났고, 할렘 지역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는 하나의 주춧돌과도 같은 지역이 됐다. 이어서 흑인 커뮤니티가 형성된 할렘에서는 안정된 흑인 중산층이 탄생했고, 교육받은 인텔리들이 늘어나면서 점점 그들의 자의식은 성숙해져 갔다. 교육받은 흑인, 사상가, 작가, 음악가, 예술가들은 할렘을 중심으로 ‘뉴니그로’를 기치 삼아 문화부흥 운동을 일으켰는데, 후대에 이르러 이를 할렘르네상스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는 흑인들의 정체성 회복 운동이자 인권신장, 문화부흥 운동이며 흑인 사회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 표현의 장이었다. 일각에서는 하이브로로서의 할렘르네상스에 주목하지만 흑인들의 문화적 에너지와 창조성은 로브로 형태로 강하게 표현됐고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다름 아닌 재즈와 루이 암스트롱을 말한다. K클래식은 하이브로에, K팝은 로브로에 해당한다. 가난·속박·멸시·해방·교육·예술활동으로 이어져 온 흑인들의 백년 삶의 궤적과 문화운동이 우리와 비슷한 모양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조명계 전 소더비 아시아 부사장
조명계 전 소더비 아시아 부사장
2024-07-23 3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