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처법, 엉뚱한 사람들에게 ‘혜택’
고용부는 조직 확대, 위상 강화
로펌 돈벌이, 거대 노조 입지 키워
‘약자 위한 법’이 강자에게만 이익
중대재해처벌법이 확대 시행된 지 한 달이 됐다. 여권은 29일 임시국회에서 이 법의 유예를 재추진한다는 계획이지만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는 야당 탓에 통과는 어려워 보인다. 중대재해법은 50인 이상 사업장은 2022년,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지난 1월 말부터 적용됐다.중대재해법은 과연 안전사고 위험에 노출된 노동자를 위한 법일까. 현재 사고 통계 등을 종합하면 ‘아니다’다. 법 시행 2년이 지났지만 산업 현장의 사고 사망자는 줄지 않고 있다. 그럼 중대재해법의 최대 수혜자는 누구인가. 실제 이득을 본 곳은 고용노동부, 노조, 로펌 세 그룹이다.
고용부는 이 법 덕분에 조직과 위상이 강화됐다. 산재사고 예방 강화를 내세워 기존 산재예방보상정책국(47명)을 산업안전보건본부(82명)로 대폭 격상·확대했다. 지방 조직도 늘렸다. 특별사법경찰관 신분으로 기업 현장을 관리감독하며 산재사고를 수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근로감독관은 350명에서 810명으로 증가했다. 관련 예산은 8000억원 늘었다. 노동자 수에 견주면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약 3배, 일본보다 2.4배 더 많다. 하지만 전문성이 떨어져 실질적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산재사고에 대해 기업 오너까지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이 고용부에 있다 보니 관련 업무를 맡았던 관료들의 퇴임 후 ‘꽃길’도 보장됐다. 고위직은 물론 과장까지 로펌, 대기업 등에서 모셔 갈 정도다. 사업주 등의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해 대관(對官) 업무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과거 인기 없던 부서의 몸값이 치솟고 퇴직 후에도 귀한 대접을 받다 보니 고용부 공무원들은 내심 이 법이 약화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후문이다.
노조는 근로자 안전과 권익 보호를 위한 조직인데, 법 시행 이후 과연 얼마나 적극적으로 산재 예방에 나섰는지 의구심을 갖는 이들이 적지 않다. 독일 등 선진국 노조에는 안전 분야 박사 학위를 가진 전문가들이 포진돼 노동자 안전을 챙긴다. 기업주와 노조가 머리를 함께 맞대고 산재 예방 방안을 논의한다.
반면 우리나라 노조는 안전 문제를 임금 문제 등을 압박하기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누굴 처벌해야 할지도 모르는 모호한 규정 등으로 지키려야 지킬 수 없는 부실한 중대재해법의 약점이 노조에는 협상력을 키우는 좋은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사업주의 ‘엄벌’을 규정하고 있으니 노조 입장에서는 ‘명분’과 ‘협상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꽃놀이패’로 활용되는 셈이다.
로펌 역시 중대재해법 법률 시장이 새로 열리면서 호시절을 맞았다. 기업은 경영주의 감옥행을 막아야 하는 절박한 입장이라 산업안전 진단 컨설팅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안전관리를 잘하고 있다는 ‘면책용’ 근거를 갖춰야 하고 이를 위한 정밀 컨설팅이 절실한 것이다. 주요 대기업은 20억원, 알 만한 기업은 10억원, 공공기관은 3억원의 고액 컨설팅을 받는다는 얘기도 들린다. 산재 사고로 소송까지 이어지면 그 비용은 몇 배로 늘어난다.
중대재해법을 집중 다뤘던 한 로펌은 과거 10년간 매출액을 법 시행 첫해인 2022년 1년간 쓸어 담으면서 바닥을 기던 로펌 매출 순위가 수직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형편이 어려운 영세기업은 로펌 대신 민간 컨설팅회사를 찾으면서 관련 회사들도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중대재해법 시행으로 정부 조직과 예산이 늘고, 기업들도 엄청난 돈과 노력을 쏟아붓고 있지만 정작 산재 예방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근로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법이 엉뚱한 사람들에게 혜택으로 돌아간 꼴이다. 약자를 위한 중대재해법이 거꾸로 기득권자들에게 혜택이 가는 법으로 전락한 아이러니. 보여주기식 안전 조치에 매달리게 하고 실효성도 없는 이 법을 다음 22대 국회에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하는 이유다.
최광숙 대기자
최광숙 대기자
2024-02-27 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