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칼럼]아버지의 이름으로/김동률 KDI 언론학 연구위원

[객원칼럼]아버지의 이름으로/김동률 KDI 언론학 연구위원

입력 2010-05-11 00:00
업데이트 2010-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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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일그러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극명하게 그리고 있다. 타락한 아버지 표도르는 맏아들 드미트리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막내 아들 알리샤만 싸고 돈다. 아버지 부재 속에서 자란 드미트리는 아버지를 증오하게 되고 죽이려는 마음까지 먹는다. 동생 이반의 사주를 받은 배다른 형제인 스레르자코프에게 아버지가 살해되지만 드미트리가 누명을 쓰고 투옥된다. 배심원들은 그간의 정황으로 미루어 그를 살해범으로 단정한다. 드미트리는 무죄를 호소했다가, 마음속에서 항상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했던 것은 아버지를 죽인 것이나 매한가지라며, 자신에게 던져진 혐의를 인정해 버린다. 이처럼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 증오가 얽히는 경우는 드물지만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미움이 싹트는 경우는 허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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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 KDI 연구위원
김동률 KDI 연구위원
굳이 오이디푸스·일렉트라 콤플렉스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아버지의 자리는 늘 무언가 허전하고 외롭고 쓸쓸하다. “오늘의 이 영광을 어머니께 돌리고 싶다.” 올림픽 등 세계적인 경기를 보다 보면 자주 듣는 소리다. 아버지도 분명 공로가 있을진대 아버지에 대해 언급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가끔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기도 하지만 그럴 경우 대개 해당 선수의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다. 그래서 아버지는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라고 한다. 실제로 많은 아들들은 아버지를 멀리하고 싶어한다. 작가 신경림은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나는 자랐다/아버지가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노라고/이것이 내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어머니의 사랑은 무조건적이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조건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아버지는 딸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지만, 아들은 자신이 기대하는 기준에 도달해야 만족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망하고 나중에는 이 실망이 미움으로까지 변하게 된다. 재벌이 아들이 여럿 있는 경우 맏아들이 아니라 아버지 말을 가장 잘 듣는 아들을 후계자로 선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들과 대화를 나누는 아버지는 드물다. 아들이 아버지와 대화를 가장 많이 나누는 것은 살아 있을 때가 아니라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의 성묘길이라고 한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아버지와 아들이 단둘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일주일에 평균 7분 정도에 그친다고 한다. 상당한 거리감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많은 아버지들은 자신의 아들에게 애정을 아예 가지지 못하거나 설사 가진다 하더라도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일생을 보낸다. 재미있는 것은 무뚝뚝한 아버지라도 아들의 아들인 손자에게는 무한한 애정을 보인다는 것이다. 손자에게 보여주는 애정을 아들에게는 왜 진작 보여주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은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땅의 아들들에게 말하고 싶다. 비록 사커 맘, 헬리콥터 맘 같은 아버지는 없지만, 아버지의 이름으로 남몰래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있다.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 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김현승의 ‘아버지의 마음’이란 시다.

오월이다. 이 땅의 모든 아들들은 알아야 한다. 아버지의 이름이 얼마나 슬프고 고독하고 처절한 것임을. 아들아, 스스로 아버지가 되어 보기 전에 부디 미리 알아다오. 아버지는 이제 많이 늙어, ‘새끼들 사진 보며/한 푼이라도 더 벌고/눈물 먹고/목숨 걸고/힘들어도 털고/일어날 수 있는 슈퍼맨’ 이 더 이상 아니라는 것을(싸이의 노래 ‘아버지’중에서).
2010-05-1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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