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대] 라인강가에서의 ‘봉주르~’ ‘구텐타크~’/장홍 프랑스알자스주정부개발청 자문위원

[글로벌 시대] 라인강가에서의 ‘봉주르~’ ‘구텐타크~’/장홍 프랑스알자스주정부개발청 자문위원

입력 2013-06-24 00:00
업데이트 2013-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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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홍 프랑스알자스주정부개발청 자문위원
장홍 프랑스알자스주정부개발청 자문위원
라인강은 스위스 바젤에서 발원해서 북해로 흘러들어간다. 강의 동쪽은 독일이고, 서쪽은 프랑스다. 지난날 이 강을 사이에 두고 독일과 프랑스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무수히 경험했다. 라인강이 핏빛으로 물들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알자스의 역사가 이를 잘 보여준다. 알자스는 1870년 독·불전쟁부터 1945년까지 불과 75년 사이에 국적이 무려 다섯 번이나 바뀐 독특한 지역이다. 1870년 이전에는 프랑스 영토였다가, 독·불전쟁에서 프랑스가 패하면서 독일 영토로 편입된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다시 프랑스로 환원됐고, 1940년 나치가 다시 강점했다가, 1945년 연합국의 승리로 프랑스가 되찾아 와 오늘에 이르게 된 지역이다. 내 친구의 증조할아버지나 할머니들 중에는 생전에 이 모든 것을 몸소 겪은 분들도 허다하다고 한다.

한때 우리 교과서에도 실렸던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은 1870년 전쟁을 그리고 있다. 배경이 된 곳이 바로 이 알자스의 한 한적한 마을이었다. 1차 대전 당시는 알자스가 독일 영토라 알자스 사람들은 독일 군복을 입고 프랑스에 맞서 싸워야 했다. 그리고 얼마 뒤 맞은 제2차 세계대전…. 양상은 복잡해졌다. 같은 집안의 형제 중에 한 명은 독일군에, 다른 한 명은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가담해 형제간에 총부리를 겨누고 싸워야 했다.

하지만 분쟁과 갈등의 라인강은 기적처럼 평화와 번영의 상징으로 되살아났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독일과 프랑스는 과거의 원한보다는 미래의 평화와 번영을 선택했다. 너무나도 아프고 생생한 원한이 뼈에 사무친 그들에게 화해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악물고 아픔을 이겨내며 새로운 역사를 써가기 시작했다.

2차 대전 후 유럽 통합의 전제 조건은 오랜 숙적인 독일과 프랑스의 재화합이었다. 양국이 과거에 얽매여 반목하는 한 유럽 통합은 첫 단추부터 꿰기가 불가능했다. 나치의 만행에 대한 독일 지도자들의 철저한 반성과 큰 틀에서 과거의 적을 미래의 파트너로 받아들이는 프랑스 지도자들의 역사적 안목과 통큰 결정이 필요했다. 그 결과 마침내 유럽의 통합이 이뤄졌고, 지난 수세기 동안 전쟁의 대륙이었던 유럽은 평화와 통합의 대륙으로 변모했다.

라인강가에 서면, 역사의 무상함과 동시에 교훈을 되새기게 된다. 얼마나 오랜 세월 저 강은 인간의 욕심과 반목 때문에 핏빛으로 물들어 흘렀을까. 또 이웃 간에 잔혹한 행위들이 얼마나 많이 저질러졌을까. 그러나 동시에 인간 정신의 위대함도 본다. 올바른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때론 여론을 거스르면서까지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려는 정치적 용기와 결단을 내릴 때, 라인강 같은 분쟁의 강도 얼마든지 평화 공존의 강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배운다.

나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라인강을 넘나든다. 걸어서, 자전거로, 자동차로…. 라인강 위에는 수많은 상선들과 유람선들이 평화롭게 떠다닌다. 강의 양쪽에는 공원을 만들어 두 나라 사람들이 자유롭게 산책도 하고 피크닉도 즐긴다. ‘봉주르(bonjour)~’, ‘구텐 타크(guten Tag)~’, 아침인사는 이렇듯 여전히 다르지만,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 위로 나날이 냉각되어 가는 한·일 관계가 오버랩된다. 가슴이 먹먹하다.

2013-06-2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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