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골목상권과 소비자 보호/오승호 논설위원

[씨줄날줄] 골목상권과 소비자 보호/오승호 논설위원

입력 2012-11-19 00:00
수정 2012-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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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위 유통업체 월마트가 우리나라에 진출한 것은 외환위기 발생 이듬해인 1998년. 월마트는 당시 한국의 소비자들은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시기여서 싼 제품을 무조건 좋아할 것으로 판단했던 것 같다. 월마트의 핵심 역량인 EDLP(Everyday Low Price·매일 염가판매) 전략을 그대로 구사했다. 한국 소비자들의 취향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창고형 할인점 방식을 고수했다. 결국 적자가 누적되면서 2006년 철수했다. 한국 시장에서 실패한 월마트는 일본 유통시장에서는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처럼 가격인하 정책은 유지하고 있다. 월마트의 경영 이념인 ‘절약’이 일본 소비자들의 성향과 맞아떨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세계 4위의 글로벌 유통기업인 영국 테스코가 미국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원인도 소비자에서 찾을 수 있다.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소규모 슈퍼마켓을 진출시켰지만 일주일에 한 차례씩 장보기를 하는 미국인들의 소비 패턴과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장경제는 소비자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 주는 사례들이다.

대형 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 규제를 통한 골목상권 보호 문제로 잡음이 그치지 않고 있다. ‘정부 따로, 정치권 따로’ 현상마저 빚어지고 있어 소비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는 지난 16일 대규모 점포의 영업시간 제한(밤 10시~다음 날 오전 10시)과 의무휴업일(월 최대 3회)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지식경제부가 대형 마트 등의 대표들과 회의를 열고 매월 2회 의무휴업, 인구 30만명 이하 도시의 대형 마트 출점 자제 등 굵직한 합의를 이끌어 낸 지 불과 하루 만이다.

법 개정안의 상임위원회 통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일부 진전에도 불구하고 대형 마트나 SSM에 대한 허가제가 도입되지 못한 점을 들어 추가 대책이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도 있다. 반면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을 무시한 전형적인 포퓰리즘법이라며 반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사회적 약자인 영세 상인은 보호받아야 한다. 그러나 소비자 편익을 생각하지 않는 정책이 성공할 수 있을까. 대형 유통업체의 영업을 제한하더라도 소비자들이 밤늦게, 또는 휴일에 재래시장으로 발길을 돌리게 하는 여건이 조성되지 않으면 상생하기 어렵다. 전통 시장의 주차시설, 신용카드 결제나 환불 시스템, 친절 등 자생력을 키울 필요성도 규제 못지않게 절실하다.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2012-11-1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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