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상도 산업부 기자
애플의 전설적 최고경영자(CEO)인 고(故) 스티브 잡스도 마찬가지다. ‘인문학과 융합된 기술만이 인간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믿음을 품고 살았다. 젊은 시절 인도로 명상 여행을 떠나 삶의 본질을 파고들기도 했다. 저커버그나 잡스는 사실 기술자가 아닌 창조적 사상가에 가깝다.
이런 천재들이 산업계에 불러온 파급 효과는 엄청나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 25일 국가건축정책위원회에서 “우리 건축설계 분야가 제대로 발전하려면 세계가 인정하는 ‘미친 천재’가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 젊은이들이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현실은 어떤가. 우리 사회에서도 인문학에 대한 대중적 열기는 몇 년째 식지 않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정치 철학서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고 도서관이나 문화센터, 주민센터에선 인문학 강좌가 개설돼 수강생을 끌고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정치와 경제를 비롯해 우리 삶에서 불확실성이 쉽게 걷히지 않고 있음을 방증한다. 정의와 도덕, 자유와 같은 본질적 가치에 대한 욕구가 더 강해졌다는 뜻이다.
대학가에선 여전히 인문학을 비롯한 기초학문 분야가 상품성의 결여로 홀대받고 있다. ‘스펙’이 강조되는 취업전선과 무한경쟁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모순 탓이다.
건축업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예술적 가치는 뒷전으로 밀린 채 대기업과 다름없는 대형 건축설계사무소가 즐비하고, 중소 사무소는 불황 탓에 폐업으로 내몰리고 있다. 영화 ‘건축학개론’ 속 여주인공 서연의 집처럼 ‘사람’이 담긴 건축물은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위정자들이 ‘미친 천재’를 기대하기에 앞서 미래 세대가 꿈을 키울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줘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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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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