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어느 불법 체류자의 죽음/김진아 사회부 기자

[오늘의 눈] 어느 불법 체류자의 죽음/김진아 사회부 기자

입력 2011-11-07 00:00
업데이트 2011-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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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만 아프다고 말할 수도, 치료조차 받을 수도 없었다. 지갑에는 현금 100만원이 있었다. 고국 필리핀에 있는 아내와 아들에게 보낼 돈이다. 필리핀 출신 불법 체류자 나랏 윌리엄 바리안(47)은 지난 3일 밤 서울 도봉구 쌍문동의 한 다세대주택 지하 2평짜리 쪽방에서 홀로 숨진 채 발견됐다. 당뇨, 고혈압 등 지병을 앓다가 숨을 거뒀다는 게 경찰 측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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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아 사회부 기자
김진아 사회부 기자
바리안은 2004년 직업교육 비자로 입국했다 비자가 만료된 2005년부터 지금껏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양말 공장 등에서 일했다. 무려 6년간이다. 땀 흘려 번 돈의 대부분은 가족에게 송금됐다. 바리안의 머리맡에는 가족사진과 함께 가족에게 돈을 보낸 영수증이 놓여 있었다.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그가 불법 체류자로서 가슴 졸였을 한국 생활에 가슴이 저민다. 안타깝다.

바리안은 몸이 좋지 않았지만 병원을 찾지 못했다. 건강보험이 없어 치료비도 많이 드는 데다 불법 체류자라는 사실이 발각돼 추방될지 몰라서였다. 때문에 속으로 앓다가 그리운 아내와 아들을 보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법적으로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라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다. 못된 업주로부터 떼인 월급도 받아 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사정은 다르다. 생각도 다르다. 한 외국인 노동자는 “정부에서는 강제 출국을 당하더라도 당하기 전에 아픈 사람은 치료해 주고 떼인 월급도 받아 준다고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그냥 쫓아내 버린다. 그러니 아파도 참을 수밖에 없다.”며 감정을 억눌렀다.

인터넷에는 바리안의 죽음을 두고 ‘불법 체류를 하다 그리 됐으니 어쩔 수 없다. 이번 기회에 불법 체류자는 다 나가라.’는 등의 의견이 오르고 있다. 불법 체류자를 사회의 한 불안 요소로 여기는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불법 체류자이기 이전에 바리안도 한 인간이다. 적어도 한 인간으로서 그가 왜 비참하게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싶다.

jin@seoul.co.kr

2011-11-0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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