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입 범위·조건 명시…”관치금융 인정하는 꼴” 반론도
금융감독원이 채권단의 동의를 받아야만 기업 구조조정에 개입할 수 있도록 명문화한 법안이 발의되면서, 경남기업 사태로 촉발된 관치금융 논란을 차단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법안을 마련한 정부·여당은 관치금융의 개선책이 되리라 기대하지만, 금융권을 포함한 외부에서는 반대로 ‘관치금융을 인정하는 꼴’이라며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정우택 국회 정무위원장이 여당 의원 20여 명과 11일 공동발의할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 개정안이 이런 상반된 시선의 중심에 있다.
기촉법 개정안에는 제5조·제18조·제22조·제26조·제27조 등에 금융채권자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채권기관의 조정기능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금감원장이 갖고 있던 채권행사 유예요청 권한을 주채권은행으로 이관했고, 금감원은 기업개선계획과 채무 조정, 신용공여 수립 등 한정된 범위에서 채권단협의회 구성원 50% 동의를 받아야만 개입할 수 있다.
협의회 절반의 동의를 받아 금감원이 중재안을 내더라도 협의회에서 이를 의결해야만 효력을 발휘한다.
이렇게 기업구조조정 과정에 금감원이 개입할 ‘한계선’을 그은 것은, 최근 경남기업 사태로 도마 위에 오른 관치금융 논란과 무관치 않다.
최근 본격적인 검찰 수사가 이뤄지는 경남기업의 3차 워크아웃 시기에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전방위 로비를 펼쳤고, 그 결과로 금감원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따르면 2013년 10월 3차 워크아웃 당시 주채권은행인 신한은행은 경남기업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성 전 회장의 지분을 무상감자하려 했지만, 금감원에서 이를 가로막았다.
대주주의 무상감자 없는 출자전환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채권금융기관들도 구조조정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반발했다.
그러나 금감원에서 개입해 성 전 회장의 입장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도록 외압을 행사했다는 것이 감사원의 판단이다.
이에 따라 지난 7일에는 당시 기업구조조정 업무를 맡았던 김진수 전 금감원 부행장보의 자택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이뤄지기도 했다.
현행 기촉법에 따르면 기업구조조정에 금감원은 개입할 수 없으나, 경남기업의 사례에서 보이듯 금융기관의 감독 권한을 가진 금감원이 비공식적으로 ‘조정자 역할’에 나서면 채권단은 따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차라리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금감원의 개입을 투명화하고, 개입 요건을 명확히 해 부작용을 없애자는 것이 이번 기촉법 개정안의 취지다.
정우택 의원실은 “지금까지 금감원이 비공식적임에도 절대적인 권한을 가졌다고 한다면, 이제는 기준선을 제시하고 채권단에 자율권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채권단 협의회의 요청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의 ‘차단기’를 설치해 금감원의 자의적 개입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기촉법 개정안이 이런 기대처럼 효율적인 차단기 노릇을 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도 만만찮다.
한 시중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경남기업 문제가 생긴 데서 보이듯이 지금도 금감원이 감독업무를 앞세워 모든 것을 통제하는 상황인데, 여기서 바뀔 것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개입할 수 있는 범위와 절차를 규정했다고는 하지만, 당국에서 마음을 먹고 개입한다면 채권단이 따르지 않을 도리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오히려 암묵적으로 이뤄지던 금감원의 개입 권한을 명시해 관치금융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LG경제연구원의 문병순 책임연구원은 “채권단 협의회 50%의 동의를 받아야만 개입할 수 있다고 하지만, 오히려 동의가 부족할 때 금감원이 동의 비율을 높이려 압력을 가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정우택 의원실은 “금감원이 중재안을 내더라도 채권단의 의결이 없이는 효력이 없다”며 채권단의 자율성을 강조했지만, 이 역시 채권단에서 감독기관의 뜻을 거역할 수 있겠느냐는 현실론에 반박당하는 면이 있다.
다만, 금감원을 포함한 금융당국의 구조조정 개입이 반드시 경남기업의 사례에서처럼 악영향만 미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기업채권에서 은행 외 회사채나 연기금, 자산유동화 등 비협약채권 비중이 50% 정도로 확대돼 채권은행의 영향력이 약해진 상황이므로 당국의 개입이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구조조정이 지연돼 좀비 기업이 늘어나면 정상기업의 고용 증가율과 투자율을 하락시키고, 결과적으로 경제 전반의 역동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 이어질 정치권 논의에서 이런 취지를 살리며 부작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